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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이야기?⑩ 밝게 보기

싫은 상황의 대안적 가능성

  • 기자명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19.01.31 11:30
  • 수정 2020.03.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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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필자주]자소서는 필자가 2016년 모바일 앱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며 진행한 한시적 프로젝트였다. 자소서에 관심을 둔 이유는 몰개성을 양산하는 교육, 어른들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가진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울같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죽고 획일화된 사고가 극복되지 않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다해도 풍요한 정신적 삶은 요원하다. 이 연재는 학생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자소서'를 소재로 우리들 고정관념을 살펴본다(물론 자소서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맥락전환의 기본원리 / 맥락전환은 쉬운가 / 자동반응 / 자동반응의 다양한 형태들 / 범주화의 오류가 초래하는 닫힌 세계 / 진실을 억압하는 통념들 / 논리와 표현 / 태도 그리고 서술 / 사실과 의견의 구분 / 싫은 삶의 대안적 가능성 /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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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겨울. 부산 수영만에 있는 계류장에서 내가 크루로 참여하는 요트를 다른 크루들과 수리했다. 날이 어두워져 일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올라섰던 작업대가 움직이며 몸이 밑으로 떨어졌다. 마침 옆 선박 굄목 모서리에 등을 부딪쳤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여러 검사를 마친 후 젊은 당직 의사는 당장 간병인을 부르라면서 ‘절대 안정’을 명했다. 복합 골절로 최소 4개월은 움직이지 말고 누워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든 생각. '앗싸! 4개월 동안 누워 지내는 경험도 해보는구나!' 다음날 전문의가 재검사하니 오진이었다. 실제로는 갈비뼈 골절과 폐가 찌그러진 기흉이었다. 일주일 정도 입원, 산소 치료 후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의사 말을 듣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지금 생각해도 철없다. 하지만 자신에겐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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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말했듯 맥락 바꾸기란 한 상황과 사건을 다른 맥락으로 해석, 평가하는 것이다. 맥락을 바꿀 때 유연함이 나온다. 비가 외출이라는 면에서 보면 나쁘지만 모내기 철이라는 면에서는 좋듯이. 마찬가지로 골절과 입원이라는 상황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아래는 예전 학생들과 진행한 워크시트이다.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는 연습이 자소서(자기스토리, 혹은 우리 삶에도)에 필요할 수 있다. 예시는 다리를 다친 여학생의 경우다. 다음과 같은 제시어가 먼저 주어진다.

 

이런 상황은 어떤 대안적 가능성이 있을까? 아래와 같은 예들이 있을 수 있다. 흥미 유발을 위해 농담을 섞었다.

 

비록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지만 ①생각보다 안 아플 수도 있다(대안적 가능성) ②입원 덕에 내 삶을 돌아볼 여유(유용한 부분)를 갖게 됐다 ③엄마 입장(타인의 시각)에서는 안타깝긴 하지만 쉬실 수도 있다 ④입원 동안 잘생긴 의사를 만나는 엉뚱한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해석들은 다음과 같이 일반화할 수 있다. 하나의 나쁜 상황, 확정적 사건은 ①실제와 다를 가능성 ②유용한 부분의 탐색 가능성 ③타인의 시각에 의한 다른 해석 가능성 ④엉뚱한 해석에 의한 다른, 의외의 가능성 등이 있다.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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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확정적 상황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는 것이 갖는 의미는 뭘까. 첫째는 앞서 말한 대로 다른 측면을 탐색함으로써 갖게 되는 새로운 상황의 가능성이다. 맥락 바꾸기는 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옵션이다. 하나의 상황은 오로지 하나의 상황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 나아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6편 랭어(하버드대 심리학과, 종신교수)의 실험을 빗대어 말한다면 '모든 것은 강아지 장난감'일 수 있다. 자소서가 되었든 면접이 되었든 결국 내가 겪은 일들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다른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 그 해석이 풍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갖게 되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합리화와 다르다. 합리화란 잘못된 견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맥락 바꾸기는 같은 상황의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둘째는 각각의 대안들은 자신의 개성, 개성에 따른 준거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필자의 경우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경험’이다. 그래서 ‘간병인에 의존한 움직이지 못하는 생활’을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 해석했다. 다른 사람은 다른 데에 가치를 둘지도 모른다. 어떤 가치에 대한 준거는 매우 다양하며, 거기에 우열은 없다. 그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개성을 구성한다. 어떤 사건의 해석을 결정하는 것, 즉 그가 선택한 다른 해석은 그의 개성이다. 앞에서 계속 말했다. 자소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라고. 자기> 소개>서라고.

셋째는 행복 추구하는 데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있다. 이것이 개인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 개인의 개성에 따라 행복 추구 전략이 개별성을 갖는 걸 말한다. 혹자는 이렇게 비판할 지 모른다. 맥락 바꾸기란 일종의 자기기만이며,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유심론으로 바꾸는 지배자 이데올로기라고(유심론: 우주 만물의 근본은 정신적인 것이며, 여기서 물질적인 것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이론). 정말 그럴까? 1편 뉴욕 청소노동자의 실험에서 청소에 운동이라는 맥락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기기만일까? 우리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 속에서 ‘괴로워야만’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가 고취될까?

근본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 그를 위한 근로조건 개선이나 정치 활동 등이 의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전략도 필요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며, 내 삶에서 최종적 행복을 규정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더라도 여전히 개성 속에 살아 숨 쉬는 개인이 존재하는 한, 자아에 관한 규정은 자아의 몫이기 때문이다. 맥락 바꾸기는 행복 추구를 위한 심리적 방법론일 수 있다. 맥락 바꾸기가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는 생각은 착각이거나 독선 혹은 무지일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해결하는 것은 사회적 전략만이 전부라거나, 개인적 행복에 대한 오만한 규정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최종적 행복은 오로지 각 개인이 규정한다.* 오히려 다양한 맥락으로 사회변화를 추구함으로써 사회변화의 창의적 동력이 맥락 바꾸기로부터 가능할 수 있다.

자소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소서는 전체적으로 교육, 그리고 교육기관, 기타 가정과 학우들과의 경험을 증거로 하여 자신의 행복 추구 전략을 드러낸다. 자기만의 방법론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이 개성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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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다. 사람들이 함께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살면서 사회의 자산(자원)을 나눠 쓰고 그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 자원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양질의 교육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다. ‘스카이캐슬’에서 보듯 어쩌면 그것은 '전쟁'같기도 하다. 경쟁에 필요한 소품 중의 하나가 자소서다. 작은 계기다. 하지만 경쟁의 수단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활용 여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1편에서 제안했듯이 다른 맥락으로 볼 때 그렇다. 자소서, 확장하면 나의 스토리, 더 확장하면 내 삶에 대해 맥락을 바꾸기는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목표와 내용을 조정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때 앞서 말한 것들을 필터로 그리고 랭어가 말하는 마음 챙김이 활용될 수 있다. 유연한 사고하기는 언제나 이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한 자주적 규정이다. 그게 분명하면 자소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원래 이편을 마지막으로 하려 했는데 워크시트로 분량이 길어졌다. 맺음말을 미뤄야 할 듯하다. 다음 편이 마지막이다. 맥락 전환의 선구자들을 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 자소서 이야기 전체의 맥락도 바꿀지 모른다. 필자 능력이 아니라 선구자들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덧. *이 부분(맥락 바꾸기가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는 생각은 착각이거나 독선 혹은 무지일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해결하는 것은 사회적 전략만이 전부라거나, 개인적 행복에 대한 오만한 규정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최종적 행복은 오로지 각 개인이 규정한다)은 인간의 행복에 관한 철학적 문제이다.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필자: 1985~1996년 성균관대 수학. 전 인포허브, 네오엠텔 본부장 등 모바일분야 IT업계 19년 근무. 스토리텔링 회사 <꿈틀> 기획이사를 거쳐 현 미니기업 <투와캠프> 운영 및 자영업. 꿈틀 재직 시 엘렌 랭어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심리연구소 <엘 엠 아이 코리아>와 협업해 랭어 긍정심리학을 기반한 <마인드풀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알로곤 학원> 등에서 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 강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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