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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풀이의 문화산책] 스윙키즈와 말모이, ‘잘 만든’ 영화와 ‘좋은’ 영화

  • 기자명 하영권 기획위원
  • 입력 2019.02.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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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키즈’(강형철 감독)는 2018년 말 크리스마스 즈음에 개봉했다. 최종 관객 147만 명으로 흥행실패를 기록했다. 135억 원 투자에 370만 명 관객이 손익분기점이라 한다.

반면 2019년 초 개봉한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는 280만 명을 돌파하고 아직 상영 중이니 힘겹게 흥행 성공작이 될 전망이다. 말모이는 115억 원 투자로 손익분기점이 300만 명이다.

 

두 영화 모두 '문화의 힘'을 다루고 있다. 볼만한 영화들이다. 의미와 재미를 가졌다. 비슷한 점이 많은데도, 흥행의 차이가 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추론해 본다.

 


 

‘문화의 힘’을 다루는 영화들

 

스윙키즈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좌우의 이념대립이 격심한 현장에서 ‘탭댄스’를 둘러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춤에 담긴 자유 본능을 이용하거나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자유 본능은 이념의 틀 아래 짓밟히고 만다. 크리스마스 댄스 공연이라는 있을 법한 이야기(스위스 종군기자가 남긴 한 장의 사진, 포로들이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유래한 극본이다)로 꾸며낸 허구(Fiction)이다.

말모이는 식민지시대 경성의 한 서점을 배경으로 한다. 민족 대립이 격심한 현장에서 ‘말모이(사전)’를 둘러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지식인과 민중이 ‘말’을 통하여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실제의 한글어학회 사건에 상상력을 보탠 팩션(Faction, 사실극)이다.

 

‘춤과 말’이라는 문화를 소재로 한 두 작품 모두 ‘문화의 힘’을 그린다.

춤에 담긴 자유 본능, 말에 담긴 민족 얼 등이 억압과 갈등을 넘어설 새로운 삶의 불씨라는 것을 강조한다.

문화만을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 역사적 배경이다. 그 현실 속에서 이념만이 아니라 생존 가족 본능 그리고 문화 등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춤을 추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세력들. 그 사이의 갈등과 배신, 극복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엄중한 현실 속에서 ‘총보다 춤, 전쟁보다 리듬’이 강조된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세력들. 그 사이의 갈등과 배신, 극복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인다’는 것이 강조된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유사하다.

둘 다 촬영시간 약4개월에 상영시간 2시간(스윙키즈 133분, 말모이 135분)이 넘는다. 마지막 장면도 극장과 총격전으로 같다.

주제, 소재, 스토리 전개, 예산, 규모 등에서 두 작품의 일치율(synchro)은 매우 높다.


 

스윙키즈를 만든 강형철 감독(1974년생)은 써니(745만), 과속스캔들(822만) 등의 흥행작을 만든 노련한 실력파이다. 말모이를 만든 엄유나 감독(1979년생)도 젊은 신인이지만, 택시운전자(1217만) 등을 만든 실력파이다.

스윙키즈는 그룹 엑소 메인 보컬인 아이돌 배우 도경수(극중 로기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연급인 박혜수, 오정세, 김민호의 연기도 멋지다.

말모이는 GOD 서브 보컬이었던 아이돌 출신 배우 윤계상(극중 류정환)이 주인공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유해진(극중 김판수)과 다수 조연들의 연기도 멋지다.

감독들의 실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은 거의 맞수이다.

이처럼 많은 유사성과 맞수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치율 많은 맞수 대결

 

스윙키즈는 개봉 당시 ‘보헤미안 랩소디’의 열풍에 밀려 버렸다. 입소문은 그룹 ‘퀸’에 집중되었다. 또 영화 전문가들은 흥행 참패 요인으로 메시지가 약하고 스토리가 꼼꼼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주연배우가 ‘스타성’이 약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 것인가?

 

스윙키즈는 비극의 전형이다.

영웅의 탄생과 좌절을 그린다. 춤(문화)은 비극적 현실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이었지만, 이념 대결 앞에 무력했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좌절하였으니, 비극이다.

말모이도 비극에 가깝다.

영웅(특히 민중의 전형인 김판수)의 탄생과 좌절을 그린다. 표준말은 비극적 현실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이었다. 문화는 폭압 앞에서 무력했기에, 지속적인 희생과 헌신이 필요했다. 해결이 힘든 문제를 안고 사실 좌절했다. 그러나 우연히(역사적 사실이지만) 부활했다.

두 작품 모두 ‘문화의 힘’을 진지하게, 그리고 경쾌하게 다룬다.

웃음마저 진지하다. 연애구도(love line) 별로 없이 2시간을 끌어간다.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이다. 두 작품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다.

하지만, 두 작품의 아픔이 약간 다르다. 스윙키즈는 그냥 아프다. 반면 말모이는 아프면서도 눈물이 나는 ‘속 시원한 아픔’을 준다. 스윙키즈에서 이데올로기 충돌 장면의 연속이 관객에게 피로감을 준다고 투덜대는 이유이다.

스윙키즈에서 주인공들의 문화에 대한 열정은 미군병사의 기억으로만 남고, 흔적 없이 사라진 것으로 그려진다. 말모이에서 주인공들의 문화에 대한 열정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우연히 부활하여 ‘사전(말모이)’으로 남는다. 문화에 대한 열정도 비교된다. 짧은 시간의 열정과 긴 시간의 열정의 차이, 문화에 대한 본능과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의 차이도 있다.

스윙키즈에서의 그 자유본능, 문화적 씨앗은 사실 세월이 지나 결국 현재 생활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스윙키즈가 그냥 ‘비극’이라면, 말모이는 ‘비극적’이라 말할 수 있다.

 

아픈 스윙키즈, 시원하게 아픈 말모이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에 몰린다. 스윙키즈나 말모이처럼 ‘뼈’가 있는 작품은 쉽게 즐기지 못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두 시간 붙들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진지한 이야기에 가족 오락영화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힘들다. 하지만, 무거운 이야기도 말모이나 택시운전사처럼 선전할 수는 있다.

강형철 감독도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구석구석 웃음코드를 배치하고, 춤과 음악의 매력을 잔뜩 부각시켰다. ‘잘 만드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잘 만든 것을 보는 것으로 맺힌 응어리를 풀어줄 ‘감동’이 약했다.

가슴을 파고 드는 슬픔은 아프다. 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슬픔은 아프면서도 시원하다. 스윙키즈는 아픈 영화였다. 아픔 뒤 시원함, 눈물 뒤에 생기는 치유가 없었다. 반면 말모이는 아프면서도 시원한 영화였다.

하나는 비극으로 끝났고, 하나는 비극적일 뿐이었다. ‘아픈 것과 시원하게 아픈 것’이 서로 달랐다.

 

스윙키즈는 허구이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개연성 높게 꾸몄다. 하지만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사실과 영화를 비교할 수가 없다. 패싸움 장면에서 서부극의 대결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 ‘할리우드 액션’이 끼어들었다. 픽션이니까.

반면 말모이는 사실극이다.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꾸며낸 이야기들이다. 판수라는 주인공조차 있을 법한 사람이지만, 실제 인물은 아니다. 꾸며낸 이야기라도, 비현실적인 장치를 사용하기 힘든 역사들이었다. 말모이는 역사적 사실과 영화 내용을 비교해 보는 해석들을 덧붙여 나갈 뒷심이 있었다.

문화의 힘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의 크기 차이가 울림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스윙키즈는 멋지게 잘 꾸며서 재미는 있지만 울림이 약했다.

작은 사실과 큰 상상으로 만든 영화와, 큰 사실과 작은 상상으로 만든 영화의 차이였다. 재미에서 두 작품이 무승부라 한다면, 의미에서 말모이의 승리였다.


 

픽션(허구)과 팩션(사실극)의 울림 차이

 

말모이를 만든 엄유나 감독의 전작은 ‘택시운전사’이다. 광주 항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광주의 장면들은 배경이나 보조 장치가 아니라, 중심이야기였다.

이번 말모이에서도 일제의 식민통치는 배경이나 보조 장치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맞서 싸우는 대상이었다. 역사와 맞서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중시하는 대중운동론까지 펼친다.

반면 스윙키즈에서 한국전쟁은 배경이다. 전작인 ‘써니’에서도 데모 장면은 보조 장치였다. 분단극복이나 민주화는 강형철 감독이 풀어내려는 주제가 아니었다. 역사에 한발 비껴서 있고, 역사의 흐름에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강형철 감독의 시선이다.

말모이는 역사를 정면에서 다루고, 스윙키즈는 한발 비켜서서 다루고 있다. 정면 보다 측면이 힘이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관객들은 역사와의 정면승부를 현실에서 이미 겪은 사람들이다.

역사를 두고, 말모이가 판정승을 하게 된 이유로 느껴진다.

 

스윙키즈와 말모이.

아픔과 속 시원한 아픔, 상상과 사실의 비율 차이, 재미와 의미의 울림 차이, 측면과 정면의 시선 차이. 이런 요소들이 모여 관객몰이에서 말모이가 스윙키즈를 앞서게 되었다고 분석해 본다.

진지한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가족오락 영화와는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한 것 아닐까. 스윙키즈는 가족 관람객을 끌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가족 관람객을 버리지도 못했다.

배우들의 기량, 감독의 역량, 투자 금액, 재미 요소 등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스윙키즈가 한발 차이로 판정패를 당한 것은 관객의 눈높이와 상관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스윙키즈는 잘 만든 영화다. 한마디로 말모이는 좋은 영화다.

스윙키즈는 지금이라도 챙겨보기를 바라는 영화, 말모이는 더 많은 관객이 모이기를 바라는 영화이다.

 

하영권 기획위원

마디글패 풀풀이(foolfool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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