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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와 고유정, 그릇된 집착과 살인마의 탄생

  • 기자명 김선태 (한국지역 인문자원연구소)
  • 입력 2019.06.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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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칼럼= 시그널 기획위원]  시어도어 로버트 번디, 일명 테드 번디는 1946년 11월 24일 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에서 태어나 1978년 7월 27일 체포되었고 탈옥과 수감을 거듭하다 1989년 1월 24일 사형되었다.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74년 2월부터 1978년 2월 사이에 엽기적인 방법으로 35명의 여성을 살해했고 5명의 여성을 죽음 직전에 이르게 했으나, 여러 증언에 따르면 그의 범행은 훨씬 일찍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희생자도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테드 번디, 불행한 가족사와 집착이 만든 괴물

 

번디는 미혼모인 엘리너 루이지 코웰에게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릴 때 번디가 외조부모 집에서 자란 탓에 외조부모는 자신들이 번디의 부모인 양 행동했고, 모친은 누나라고 속였다. 후일 번디는 스스로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찾아 진실을 확인했지만 성장기 어느 순간에 이미 상황을 파악했으며 이를 덮어 둔 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출생의 비밀은 번디의 성격을 심하게 왜곡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어느 날 그의 세 살짜리 조카 주위로 부엌칼을 빙 둘러쳐 놓아 이모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번디는 다른 남자애들보다 성에 집착하는 모습이나 약간의 도벽을 빼면 비교적 밝고 정상적인 아이로 자랐다. 이어 대학교에 진학한 번디는 1967년 스테파니 브룩스라는 여성과 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번디는 스테파니에게 푹 빠졌던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넬슨 록펠러의 공화당 대선 캠페인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번디는 장래성이 없다는 이유로 스테파니에게 차이면서 커다란 심리적 동요를 겪게 되는데, 후일 한 저명한 정신과 심리학자는 그로 인해 번디가 급격한 정신적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 말했다.

 

당장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번디는 곧바로 엘리자베스 클로퍼라는 이혼녀와 교제를 시작했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1970년 중반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과에 복학하여 주위의 인정을 받으며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 덕에 번디는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1973년 다시 스테파니를 만났다. 이 무렵 번디의 행동에 이상이 감지되고 있었으니, 그가 스테파니와 사귀면서 동시에 엘리자베스와 데이트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던 번디는 1974년 1월 아무런 예고 없이 스테파니와의 관계를 정리해 버렸다. 아마도 이전에 그녀에게 차인 데 대한 앙갚음을 그만큼의 고통을 주며 실행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 경찰 기록에 따르면 그 직후부터 번디의 연쇄살인이 시작되었다. 

 

고유정, 뒤틀린 운명과 집단화된 사이코패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유정은 84년생 제주도 출신으로 키 160cm에 몸무게 50kg 내외로 평범한 외모에 학창 시절 특이한 이력을 보이지 않았으며 여고를 졸업하고 동갑내기인 피해자 강 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이 제주도에서 렌터카 업체를 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을 꾸려 왔으며 고 씨도 이후 부친의 회사에서 실장으로 재직할 정도로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유정 : 전 남편 살해 및 유기 혐의로 신상공개가 결정된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그러던 고유정이 결혼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아마 캠퍼스 커플 시절부터 이어진 강씨와의 관계가 2013년 아이를 낳은 뒤 심리적 한계를 부른 듯하고, 그 결과 2017년 두 사람은 협의 이혼하게 되었다. 이상한 점은 당시 남편 강 씨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고유정이 아들의 양육권을 가졌는데 정작 그 자신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번디와 스테파니의 관계를 연상할 수 있는데, 남편에 대한 고유정의 어떤 주관적인 기대가 허물어지면서 그로 인해 고유정의 분노와 적개심과 집착이 차곡차곡 쌓여 갔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고유정은 강 씨가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한술 더 떠 제주대 박사과정 학생이던 강 씨가 연구수당과 아르바이트로 보낸 월 40만 원의 양육비를 인상해 달라 요구했다. 참다못한 강 씨가 면접교섭 재판을 신청했고, 고유정은 3번이나 불출석한 끝에 재판에 나와 욕설을 퍼붓는 등 공공연히 이상행동을 보였다. 그 사이 고유정은 제주 출신 남자와 재혼했는데 이후 네 살 된 의붓아들과 함께 남편의 친가에 거주했고 자기 아들은 친정에 맡겨두었다. 그런데 지난 2월 고유정이 의붓아들과 함께 남편이 직장 근처에 마련한 청주 집에 들른 지 며칠 뒤, 의붓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고유정이 자신의 삶이 꼬인데 따른 반발로 그 원인 제공자들에 대해 극단적인 적개심을 품던 시기에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인터넷 검색이나의약품 구입 같은 고유정의 사전 행적을 철저히 조사해 살필 필요가 있다.

이후 면접교섭 재판에서 승소한 강 씨의 요청에 따라 고유정은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향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때 고유정은 인터넷을 통해 니코틴 치사량, 살인도구, 시체 유기 방법 등을 검색했고 톱과 분쇄기를 구입했으며, 여객선에 그랜저 승용차를 싣고 제주도로 향한 뒤, 22일 마트에 들러 칼, 공구세트, 락스,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숫대야, 청소용 솔, 먼지 제거 테이프, 부탄가스 등을 구입했다. 약속 당일인 25일 강 씨는 소원대로 2년 만에 아들을 만나 테마파크에 간 뒤 고유정이 예약한 무인 펜션에 도착했다.

 

다음날 고유정은 아들이 잠든 사이에 강 씨를 졸피뎀으로 잠 재워 살해한 뒤 준비한 도구들을 차례로 사용해 이중삼중으로 훼손하여 수십 개의 봉투에 나눠 담았는데 그 수법이 기존의 어떤 엽기 살인 행각보다 잔인했다. 분석에 따르면 고유정은 저항력을 상실한 채 누운 강 씨에게 정밀하게 흉기를 사용해 혈흔이 벽이 아닌 천장으로 튈 정도로,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 이어 고유정은 스스로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를 보내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꾸민 뒤 펜션을 빠져 나왔고, 채 쓰지 못한 물건들은 ‘시체 옆에 있었던 것’이라 환불까지 했으며, 이후 봉투에 담긴 시신을 여기저기 나눠 버린 뒤 청주 집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체포되었다. 일각에서는 고유정이 신상 공개에 반항하면서 아들 때문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고 하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키우지도 않은 점을 보면 그에게 아들은 그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여러 증거품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뿐일 것이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일견 평범한 주부처럼 지냈던 고유정이 가사소송에서 패한 뒤 강 씨와 제주도에서 만나기까지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어떻게 그처럼 치밀하게 완전범죄를 꿈꾸었을까 하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고유정이 사회와 분리되어 사는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사회화된 사이코패스 집단 속에서 분노와 적의를 키우며 살인의 도구와 아이디어까지 획득했다는 추측에 무게를 싣게 해준다. 고유정 사건을 놓고 아래와 같은 게시물을 버젓이 올리고 있는 워마드 사이트를 보면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본문 중 괄호는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했으며, 나머지는 원문 그대로임).

 

- 졸피뎀으로 뒤졌으면 정말 편하게 죽은거노 자는 사이에 찔러서 뒤진건데 이 정도면 굿다이 아니노 자집(남자) 주제(에) 

  분에넘치는 죽음 아니노

- 노무 쉽게 죽어서 아쉬울 뿐이노 기왕 뒤지는 거 놈 고통스러워서 못 참고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노무 아쉽노ㅋㅋㅋ

- 짐승한테 졸피뎀먹인게 그렇게 큰죄노? 별거아닌걸로 난리치노

출처 : 워마드, https://womad.life/278576?page=1&r=la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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