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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문학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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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문학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 김선태
  • 승인 2020.11.1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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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간·세계·경영에 관한 이해의 보고
문학, 시장의 내면에 관한 영감·통찰 제공
‘햄릿, 호라티오, 마르셀루스, 햄릿 아버지의 유령’, 헨리 퓨슬리, 1780–5.
‘햄릿, 호라티오, 마르셀루스, 햄릿 아버지의 유령’, 헨리 퓨슬리, 1780–5년 작.

빌 게이츠와 ‘위대한 개츠비’, 스티브 잡스와 ‘리어왕’, 이병철과 ‘논어’, 정주영과 ‘흙’, 이처럼 동서 세계의 유력한 경영자들은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경영학의 구루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거의 꿰다시피 했으며 그밖에도 그가 읽고 영감을 얻은 문학 작품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문학을 어떻게 정의하건, 그것이 창작을 통해 인간 의식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고객을 창출하고 늘려 시장에 뿌리내리려는 기업이라면 시장 속의 인간인 고객을 고찰하고 이를 자신의 경영활동에 반영하기 위해 문학을 중요한 파트너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기업도 의인화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름의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시장의 폭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기업의 문학 활동은 글 대신 자신의 창조물인 제품에 혼이 담긴 가치를 불어넣음으로써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활동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만인이 공감하는 고전문학에서 자신의 ‘문학’을 위한 소재와 영감을 찾을 필요가 여기 있다. 

여기서는 문학 사상 빛나는 몇 명의 작가 또는 작품을 통해 이 문제의식을 이어가 보기로 한다.
 
고전문학, 사유의 지평 끝없이 확장해 와

문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명으로 추앙받는 셰익스피어는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 배워야 할 고전문학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족하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향연’ 말미에서 “무릇 작가라면 희극과 비극 모두에 통달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는데, 역사상 이 일을 최고의 수준에서 성취한 문호가 셰익스피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셰익스피어는 외견상 전혀 유사성이 없는 인물과 소재들로 다양한 주제에 걸쳐 종횡무진 희비극을 써 내려갔다. 사고의 지평이라는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방대한 작품을 통해 독자가 넓힐 수 있는 영역은 끝을 상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경영활동에서 자신과 자기 제품의 가치를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기업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낮다. 고객이 그로부터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기업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닥터 파우스트(Dr. Fausto), 장 폴 로랑스(Jean-Paul Laurens) 작.
닥터 파우스트(Dr. Fausto), 장 폴 로랑스(Jean-Paul Laurens) 작.

독일의 대문호 괴테조차 인간 본성에 대한 관조라는 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파우스트’는 곳곳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패러디한 흔적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괴테는 필생을 바쳐 파우스트 박사를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사실상 그의 유일한 피조물인 이 인물을 문학사상 가장 풍부한 내면을 지닌 작중 인물로 빚어냈다. 

일반적인, 평범한 후발주자에 불과한 기업들이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면 역시 이와 비슷한 노력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방대한 저작을 남기는 대신 문학사상 가장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불가사의한 인물을 창조해낸 세르반테스도 비슷한 반열에 올릴 수 있다. 그의 분신인 돈 키호테는 얼핏 글 읽기에 빠져 미쳐버린 노인으로 보이지만, 그의 영웅담과 수난사를 제대로 따라가 본 독자라면 평가를 완전히 달리할 수밖에 없다. 

돈 키호테가 보여주는 광기는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감히 누구도 그와 같은 열망을 자신의 삶에 투영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이 돈 키호테의 일대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핵심 코드가 이와 같은 열정이다. 무한경쟁의 세계 앞에 숙명처럼 던져진 기업이란 존재는 겉으로만 보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돈 키호테와 닮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이 노인의 꺼지지 않는 열망의 원천을 고민해 본 기업가라면 자신의 앞날도 그런 열망으로 개척해 나갈 것이다. 

“성인들은 신의 전장에서 싸우지만, 나는 인간의 전장에서 싸우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 사랑 둘시네아가 풀려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가는 길보다 훨씬 나은 길로 나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돈 키호테의 투명한 현실 인식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에서 세르반테스가 얼마나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인지 잘 드러난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둘시네아의 사랑을 얻고자 한 돈 키호테가 인간의 전장을 대할 때 그러했듯, 자신의 제품을 성공시키려는 기업 역시 변화무쌍한 가능성의 세계로 시장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돈 키호테’의 한 장면, 장 이냐스 이지도르 그랑빌(Jean Ignace Isidore Gérard Grandville), 1848년 작.
‘돈 키호테’의 한 장면, 장 이냐스 이지도르 그랑빌(Jean Ignace Isidore Gérard Grandville), 1848년 작.

문학을 통해 시장과 고객의 내면을 본다

톨스토이는 역사상 가장 방대한 자연을 글 속에 녹여냈으며 가장 소박한 자연조차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들을 써냈다. 기업은 시장경제와 그것을 떠받치는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소설들을 동반자로 삼을 만하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친숙한 단편에서 톨스토이는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마지막 기력까지 소진한 빠흠의 최후를 묘사하며 이렇게 썼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치수대로 정확하게 2미터, 그것이 그에게 필요한 땅 전부였다.”

이 장면에서 많은 독자가 머리를 둔탁한 무엇으로 얻어맞은 듯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인간 욕망의 무분별성과 자연의 육중함을 지극히 짧고도 명료하게 묘사해냈다. 

땅에 대한 빠흠의 욕망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시장에 대한 기업의 그것과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면이 있다.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통해 기업에게 교훈과 지침을 제공한다. 문학 속의 인간은 때로 고객이기도 하고 기업이기도 하며 기업인이기도 하며, 마찬가지로 세계는 기업이 존재하는 모든 환경으로 치환될 수 있다.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한 소설들은 범인(凡人)이 놓치기 쉬운 인간과 세계의 내면을 철저하게 추적해 그 근저에 놓인 속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 내면에 잠재한 고독, 이중성, 불안 등을 그들의 작품만큼 철저하게 해부하기란 어렵다. 

태생부터 이방인인 카프카는 고독이 인간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일깨워 20세기 시대정신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유작들은 우리 각자가 타인과 철저히 다른 존재이며 심지어는 때로 자신의 내면과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작이라 불리는 ‘성’이나 ‘변신’처럼 카프카의 글에는 대부분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 늘 어딘가의 언저리를 맴돌다 좌절하는 소외된 인간과 그를 좌절시키는 주위 환경이 카프카 작품의 전형적인 소재다. 

하지만 독자들은 어떤 충격적인 사건보다, 인간에 대한 카프카의 잠언 같은 글귀를 통해 손쉽게 자신의 내면을 반추한다. 카프카가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쓴 다음과 같은 글에 독자들이 몰입하는 이유다. 

“인간 본성은 원래 먼지처럼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워 어떤 구속도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 묶여 있다가도 이내 그 묶은 끈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제5장 작품 노트.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제5장 작품 노트.

문호들은 종종 존재의 극한을 포착한다

인간 인격의 이중성에 관해서는 어떤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에게 근본적인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보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영웅과 악마의 양면을 여러 명의 인물에서 동시에, 그것도 철저히 다른 캐릭터로 그려냈다. 

독자들은 아버지 카라마조프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사생아 형제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다른 인물상을 만나며 그들 각자의 내면에 섬뜩하게 공존하는 모순된 천성에 저항할 여지가 없이 빨려든다. 특히 완벽한 인격적 실체로 여겨지는 카라마조프가 식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인간의 숨겨진 심리를 더 이상 세밀하게 짚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찬사를 끌어냈다. 

프로이트가 이 작품을 통해 "아버지에게 살의를 느끼는 자식의 증오가 인간 죄의식의 원천"이라 보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도출했으니, 도스토예프스키가 현대인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할 만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보듯 인간 내면에서 대립하듯 공존하는 이율배반의 천성이 오늘날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소비자의 심리에도 적용됨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미래를 염려해 스스로 불안에 빠지는 존재다. 이러한 염려와 불안은 바람직한 삶, 행복 또는 즐거움에 대한 추구를 인간사의 영원한 숙제로 남겼다. 이 점에서 동양의 고전을 대표하는 논어에 필적할 작품이 드물다. 

논어는 한편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나칠 정도로 질박(質樸)하게 드러내지만(논어에서는 질박이라는 개념의 무게가 만만찮다), 다른 한편 인간 행로에 관한 공자의 심오한 지적으로 가득 차 있어 접근하기가 지독히 어렵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문구 하나를 두고 수많은 주석이 행해진 것도 그러하지만, 예를 들어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다면, 그것이 모난 술잔인가” 또는 “무늬도 바탕만큼 중요하고, 바탕도 무늬만큼 중요하다”는 대목들에 이르러 논어는 문학의 경계를 넘어 철학사상으로 승화한다. 

논어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충고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성공한 경영자들이 논어의 매력에 빠져드는 동기이자, 다른 한편 그들이 고전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받아들여 이를 통해 자신의 기업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세울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글=김선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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