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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나라를 위하여

  • 기자명 김진욱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20.04.04 00:00
  • 수정 2021.12.2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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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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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업계에 근 18년, IT 전체로 따지면 20여 년 직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게 늘 달갑지 않았다. 영광스럽고 좋은 기억도 많지만 기억하기 싫은 경험이 더 많다. 머니게임, 과도한 경쟁, 카피캣, 폐쇄망*에서의 억지서비스들, 통신사와 삼성같은 거대 제조사 갑질 등등… 물론 이런 것 외에도 내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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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망: 1997~2009년까지 통신사들이 무선인터넷을 장악해 이용자에게 네이트, 매직앤 같은 자신들 포털만 허용했던 무선통신 정책. 망사업자가 능력도 안되는 컨텐츠 사업까지 장악했던 기형적 시스템. 지금 IPTV 역시 비슷한 비즈니스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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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 선배가 막 창업한 벤처에 조인했다. 그 회사는 지금은 년10조원 가까운 거래가 일어나는 휴대폰 결제를 창안했다. 사용자인터페이스(UI)는 다르나 휴대폰으로 인터넷 디지털콘텐츠 사용료를 결제하는 방식-지금은 실물도 결제-은 최초였다(참고1). 이때 통신사, 정확히는 통신사 빌링팀 쪽에서 카피캣을 들고 나왔다. 물론 자유경쟁시장에서 카피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휴대전화 결제처럼 통신사와 협업이 필수적인 아이템에서 통신사 출신의 카피캣은 그저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는 소규모 신생기업엔 치명적이었다. 결국 솔루션만으로는 안되니 당시 벨소리-캐릭터 다운로드 같은 컨텐츠 제작으로 동시 여러 사업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휴대폰결제는 시장점유 1위를 내줘야했다.

2003년도 모바일3D 솔루션업체로 이직했다. 대표는 루슨트테크놀로지라는, 지금 5G 화웨이 같은 글로벌 중계기업체 이사 출신이었다. 제품을 삼성 엘지 휴대전화기에 임베드(선탑재)하면서 승승장구했다(참고2).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삼성은 15% 삭감조항(용역비 매년 자동삭감)으로 점점 스타트업을 고사시켰다. 말이 15%지 인건비 베이스의 용역 공급에서 15%가 3년이면 45% 깍이는 것이다*.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국 가까운 모바일 이미지 압축 솔루션 업체에 인수됐다. 여기서 나는 컨텐츠 사업을 담당하며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인수 회사는 모바일 단말기 칩으로 유명한 미국 퀄컴으로부터 일 년에 수십억씩 로열티를 지급받는 회사였다(참고3). 당시 정통부에서도 주목하는 업체였다.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이던 안철수씨도 온 적이 있다. 하지만 대형 단말제조사는 1원 한 푼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솔루션 회사를 용역 회사화했다. 여기도 역시 15% 삭감조항으로 그 용역마저 점점 고사시키게 된다. 결국 삼성전자-코넬 출신 대표는 2014년 엑싯(exit, 매각)하고 사업 아이템을 바이오로 바꿨다.

요컨대 근무 십여년 만에 주위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말짱 황”이었다. 2000년 초반 열정과 실력으로 무장했던 인재들은 어디론가 다 떠나가 버린 뒤 였다. 한국 IT(여기서는 주로 소프트웨어)는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2009년 아이폰 출현으로 ‘진짜 모바일 시대’로 넘어간다. 이때 모바일 IT는 결정타를 맞는다. 폐쇄망에서 기형적 비즈니스로 연명하던 모바일 1세대는 오픈망**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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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기업-중소기업간 원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주자본주의라는 상위질서를 개선해야 한다. 진보경제학자 정승일은 1998년 부터 경제민주화에 따라 이른바 시장개혁이 시작되고 대기업들이 캐시플로(cash flow)를 중시하면서 하청기업에 대한 태도가 나빠졌다고 지적한다. 장하준 역시 재벌들이 하청기업을 착취하는 것은 국내여론에 무관심한 외국 투자자 비율이 절반을 넘은 상황을 반영한다고 본다(정승일 장하준 등, 무엇을 선택할것인가, 2012).

**오픈망: 유선 인터넷처럼, 망사업자와 컨텐츠 사업자가 분리된 비즈니스 시스템. 형식적으로는 2007년 시작됐지만 실질적으로는 2009년 아이폰이 출시를 기점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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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 교수(아래 링크)는 우리 IT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거시적으로 생생히 증언한다. 황폐화 원흉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황폐화는 어떻게 지금 이 시각도 진행되는지, 왜 공인인증서가 엉터리인지, 왜 우리 동영상 업체들은 폭망하고 유튜브가 위너가 됐는지, 왜 네이버는 ‘각’이라는 자체 데이터센터를 가지고 있지만 통신사가 연결을 거부한 반쪽 서비스 인지, 왜 수많은 컨텐츠 프로바이더들이 사멸해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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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한국 통신사들은 유튜브 캐시서버를 운영해서 뒤로 서비스를 돕는다. 하지만 국내 컨텐츠 사업자에겐 막대한 망사용료를 받는다. 자기들 트래픽을 올려줘 사용자로 부터 데이터 사용료를 받고 있으니 돌려줘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예컨대 강남스타일을 국내 동영상 업체에 올렸으면 그 사업자는 망사용료로 망했을 것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일이 벌어지는게 국내 IT이다. 동영상 서비스에서 국내 컨텐츠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즉 유튜브 쏠림은 단순 컨텐츠 사업자 보호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다. 데이터는 국부다. 토종 쌀 종자를 외국에 갖다 바치는 거나 진배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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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전 교수)는 한국 IT계에서 특이하고 어떤 면에선 논쟁적 인물이다. 나 역시 전부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원래 서울대 물리학과를 중퇴하고 동대학 컴공과를 졸업했다. 엠파스 시스템 설계를 주도한 실력자다. 하지만 오로지 기술적 검수요청으로 통진당 경선과정 포렌식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뀐 인물이다. 어찌보면 이를 계기로 과도하게 정치적인 인물이 된 듯한 느낌까지 받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문과 출신인 탓에 어쩌면 양쪽을 다 이해하려는 축인데, 김인성 교수의 날카로움은 이해가 된다(사실 나도 약간 그렇다). 엔지니어는 불합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코딩에서 불합리함이란 에러이고 버그이고 서비스 폭망이기 때문이다.

 

4
요컨대 그가 가진 정치적 입장에 대한 찬성 불찬성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IT에 대한 그의 진단과 조언을 많은 분들이 꼭 참고하길 바란다. 덧붙여 말하면 요즘 세상은 IT세상이라 IT를 모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일반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기원처럼, 모든 캐리어(기간통신사업자, 통신사를 업계에선 이렇게 부른다)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볼모로 잡고 국내 IT를 파괴하는 나라가아닌 진정한 “창작자의 나라”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국가 기간 인프라인 통신을 다시 국유화하길 희망한다.

덧: 김인성교수의 책 6권은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IT를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핵심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필수적인 각종 보안팁은 덤이다. 일독이 아닌 필독을 권한다. 아래는 김인성교수 블로그에 기재된 광고글이다.

“인터넷 길목을 장악한 통신사, 창작자를 말려 죽이는 포털
어떻게 하면 이들을 창작자와 상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고의 콘텐츠 유통망으로 떠오른 인터넷이 창작자를 존중하게 만드는 방법
대한민국에 제2의 인터넷 부흥기를 가겨오게 만드는 방법이 들어 있는 책!!!”

https://minix.tistory.com/610 [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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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글

참고1: 인터넷 유료서비스 요금 휴대전화로 결제한다, 매일경제

참고2: 리코시스, 전직원 괌에서 단체휴가,디지털타임즈

참고3: [뉴스] 네오엠텔 “퀄컴에서 로열티받는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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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인포허브네오엠텔 등 모바일 솔루션 및 컨텐츠 업계 19년 근무(보기). 시그널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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