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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고맙소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2.01.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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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오지 않는다고요?”
건방진 고양이, 냥도리가 안내하는 인간 설명서!

이 책의 화자는 고양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로 나서는 고양이 캐릭터 ‘냥도리’는 천연덕스럽게 이 책을 설명한다. “아직은 인간의 얼굴이 낯설 여러분을 위해 인물들을 모두 고양이로 바꾸어봤어.” 인간의 얼굴이 낯선 고양이들을 위해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빠짐없이 고양이로 등장한다. 골치 아픈 철학과 사상 들을 카드 뉴스 형식의 그림으로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세상 따분한 이야기들이 각각의 고양이들을 주연으로 한 흥미로운 단막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집사, 너 자신을 알라.”
“만국의 고양이들이여 단결하라.”
소크라테스부터 체 게바라까지,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15명의 인물, 아니 고양이를 만나는 특별한 산책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고대국가와 중세사회’에서는 어떻게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렌즈가 이동해왔는지, 그 이동에 어떤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2부 ‘시민혁명과 근대국가’에서는 루소가 어떻게 근대사회를 열어젖혔는가로 시작하여 자본주의의 태동과 병폐, 그리고 인간 무의식의 세계까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3부 ‘현대사회와 미래사회’에 이르면 그간 인류가 탄탄하게 쌓아왔던 가치들이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파훼되고 있는지, 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여러 인물에 걸쳐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좀 더 알차게 지식을 즐기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부록 ‘도슨트 투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알고 다시 보면 훨씬 재미있는 배경 상식과 놓치면 아쉬운 그림 레퍼런스 소개 등 유익한 군더더기들을 눌러 담았다. 함께 수록된 ‘깊이와 넓이’에서는 본격적인 공부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독자들을 위한 추천 도서를 실어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재치와 풍자의 거장, 「장도리」 박순찬 작가
깊이 있는 통찰로 빚어낸 2,500년 인류 지성사!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순찬 작가의 그림들이다. 일반적으로 그림 텍스트는 글에 비해 단순하고 정보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순찬 작가는 26년간 만평 작업을 하며 언어적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왔고, 그 내공을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거장의 안내에 몸을 맡기고 흥미로운 연극을 감상하듯이 시선이 가는 대로 그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림마다 풍부하게 삽입된 레퍼런스들과 재치가 번뜩이는 장치들을 꼼꼼하게 뜯어보며 즐기는 재미 또한 양보하기 어렵다. 그림과 하나처럼 배치된 글들은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길이에 알찬 정보만 담았다.

특히 박순찬 작가의 창의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인물들의 명언을 패러디한 페이지는 이 책의 백미다. 근엄한 얼굴을 한 고양이들이 저마다 “집사, 너 자신을 알라.”(냥크라테스), “집사는 고양이를 중심으로 돈다.”(캣페르니쿠스), “만국의 고양이들이여 단결하라.”(냥 마르크스) 등 인물의 유명한 워딩을 재치 있게 비틀어 말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참기란 어렵다.

‘지식에 대한 부채감’을 꾸역꾸역 쌓아온 당신을 위해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선물처럼 당신 곁에 나타난 고양이 냥도리

“우리가 왜 이 인물들을 알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이 책은 “오늘의 세상과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역사란 떼어놓고 보면 개별 사건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명백한 흐름이 있다. 크고 작은 흐름들이 쌓이고 이어지며 오늘날의 사회를 형성한다. 이 흐름들을 이 책에서는 ‘시대정신’이라고 명명한다.

겉으로 드러난 개별 사건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사건과 사건의 연결고리를 잡고, 나아가 우연을 넘어선 동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스며들어 있는 정신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나 어렵다. 알아갈 마음을 먹는 것부터 어렵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를 펼친 독자가 가장 처음 만나는 장면은 엄격한 얼굴을 한 소크라테스의 흉상과 큼직하고 귀여운 얼굴의 냥크라테스가 마주 보는 페이지다. 마치 “다음 페이지가 귀엽지 않을 리가 없겠지?” 하고 말하는 듯하다. 어렵고 딱딱한 이름들에 저도 모르게 세웠던 마음의 장벽이 가볍게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역사에 관심이 지대한, 학구열 높은 고양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지식에 대한 부채감을 마음 한편에 짊어지고 있는 인간 독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2022년 호랑이해, 선물처럼 나타난 고양이 ‘냥도리’가 어쩐지 운명처럼 느껴진다면 올해야말로 지금까지 멀게만 여겨왔던 ‘시대정신’을 만날 기회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냥도리의 ‘솜방망이’를 마주 잡고, 눈과 뇌가 즐거운 산책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15명의 사상가, 아니 고양이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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