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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주변 이야기 1] 장, 장, 장의 역사와 생존기법(?)

-되찾아야 할 청와대 옆 삼청장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2.06.07 17:02
  • 수정 2022.06.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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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의 역사와 생존기법(?)

이런저런 논란에도 어쨌거나 청와대는 개방이 되었다. 대통령 없는 청와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은 세간의 관심은 개방된 청와대에 쏠려있고, 청와대 주변을 산책삼아 둘러보면서 백악정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정취에 흠뻑 젖어있다.

 - 백악정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 남산과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 백악정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 남산과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옛 임금의 후원은, 한때는 총독부의 관저로, 한 때는 현대 권력의 심장부로, 이제는 민초들의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 또 다른 권력의 교체로 인해 어떤 변화가 올지는 몰라도 우선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서울 구경은 재미가 쏠쏠하다.

시민들이 땀 흘리며 올라가는 산책길 한편에 여전히 통제된 공간이 한 곳 있다.

바로 삼청장 터이다.

종로구 삼청동 145-20, 임시정부의 부주석 우사 김규식 선생이 해방후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이다

 - 삼청장 터
 - 삼청장 터

 

돌이켜보면 격동의 해방기, 독립을 맞은 조선에 회자되는 몇 개의 장들이 있다.

김구 선생의 경교장, 이승만의 돈암장, 마포장, 이화장 그리고 김규식 선생의 삼청장이다.

이 곳들의 유사점은 일제강점기의 기업인(상당수는 친일기업가)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한 정계의 권력자들에게 희사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권력에 기생해온 생리상, 정치권력과의 긍정적 관계가 상당히 중요했을 것이다. 이 권력과 기업의 유착은 현재에도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경교장194511월 늦은 귀국을 한 김구 선생에게 당시의 금광재벌가인 최창학이 자신의 별서인 죽첨장(일본공사이던 다께조에의 이름을 딴)을 제공하여 경교장이라 불리었고, 임시정부의 청사로도 활용되었다.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한 후 최창학은 다시 경교장을 회수하였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김구선생 서거당시의 경교장
-김구선생 서거당시의 경교장

 

돈암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510월 귀국후 소공동 조선호텔(구 철도호텔, 환구단 터)에 임시로 머무르다가 조선타이어 사장인 장진섭(역시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부를 축적)의 사저를 제공받아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동활인서 터였던 이곳은 양-한옥이 같이 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으나 해방정국 초기 이승만과 하지장군과의 불화가 지속되는 것을 본 장진섭에 의해 거의 강제로 퇴거당한다. 미군정과 불화가 장진섭 본인에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본가적 판단이 작용한 듯 하다.

이후 이승만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마포 부근 일제강점기 정무총감의 별장터로 옮겨가고, 이곳이 마포장이라 불리운다. 이곳은 원래 안평대군의 별장인 담담정이 있던 곳으로 안평대군이 축출된 이후에는 신숙주가 넘겨 받았다고 전해진다. 마포장에서의 시간도 길지 않아 암살 시도등 여러 문제로 인해 실업인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이화동 1번지, 현재의 이화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화장 터 역시 신숙주의 후손이 살았던 유래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변절의 유전자는 상당히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 일반인에게 개방된 이화장
 - 일반인에게 개방된 이화장

 

삼청장194512월 귀국한 임시정부의 마지막 부주석 김규식 선생에게 대표적 친일파 민영휘(조선 최대의 친일자산가 였다)의 막내아들인 민규식이 제공한 공간이다.

 - 삼청장 가족사진  중앙에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 삼청장 가족사진  중앙에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친일기업인과 친일파들의 생존의 방식이 만들어낸 장, , 장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북연석회의 참가하며 좌우합작을 노력했던 김규식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 납북당하고 서거하면서 이 집은 다시 민규식의 후손들 소유로 유지되어왔다.

그러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국고로 환수하였고, 다시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하여, 그것이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었다.

홍석현 집안 역시 아버지 홍진기는 일제강점기 때 판사로, 4.19 당시 발포명령을 내린 내무무장관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으니, 임시정부의 부주석 김규식 선생의 자취가 있는 이 땅은 친일에서 친일로 다시 대물림 된 것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안가를 마련한다며 홍석현 회장의 삼청장(삼청동 145-20)을 구매하면서 대체부지로 경복궁옆 통의동 땅을 맞교환하였다. 이로 인해 여운형 선생과 좌우합작을, 김구 선생과 남북협상을 준비하고 논의하던 이 역사적 공간은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김규식 선생의 삶처럼 국민들로 부터 동떨어진 금단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청와대가 개방된 지금.  삼청장, 이 역사적 공간이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개방된 청와대 옆길을 걸으며 장. . . 3장을 기억해 보는 것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 홍석현 회장이 대토로 받은 경복궁 옆 통의동 땅은, 홍회장의 부인, 누이, 삼성가 여인들의 구성원으로 인해 <재벌가의 사교모임 VS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단체>라는 논란의 두 시선 <아름지기 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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