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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 천세만세 만수무강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04.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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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만세(千世萬歲) 만수무강 ^^

경복궁 교태전 입구에는 강녕전 굴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서체로 멋진 문양을 표현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입니다.

관람객에게 읽어보라하면 98%는 읽지 못합니다. 글자라고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천세만세(千世萬歲)>라고 씌어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세요^^” 하고 웃으며 정리합니다. 물론 천세만세는 단순히 천년만년이란 뜻은 아닙니다.

 

글을 잘 못 읽는 이유는 전서(篆書)이기 때문입니다. 전서는 한자가 그림글자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서체입니다. 그래서 마치 문양과 같은 형태로 굴뚝, 꽃담 등에 새겨지고, 글자의 의미 이외에도 서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이 됩니다.

전서는 흔히 대전체와 소전체로 나누는데, 진시황 통일 이전을 대전,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 통일된 글자체를 소전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과정에서 드라마나 사극에선 흔히 폭군의 이미지로 진시황이 묘사되긴 하지만, 그 방대한 중국을 다스리기 위해선 도량형, 도로, 언어, 글자 등이 통일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중국의 각 성()마다 사투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진시황은 진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역사를 없애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분서사건이 발생합니다. 각 나라의 사기뿐 아니라 (시경), (상서) 등도 불태우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래서 춘추전국의 모든 역사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무릅쓰고 상서(尙書) 한 부를 감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복생(伏生)이란 사람입니다. 그 무서운 진시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집안이 멸문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기 집의 벽 속에 상서를 감추어둡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유일한 상서이며, 중국(中國)이란 단어도 최초로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중국 역사는 오랜 혼란기를 통일한 나라는 대개 단명(短命)을 합니다. 춘추전국을 통일한 진()나라도 십수 년 만에 망하고, 위진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도 곧 망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한()이나 당()이 긴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다행인 건 진나라의 멸망 후, 그때까지 살아있던 복생이 집에 돌아와서 벽을 허무니 상서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때는 글을 죽간에 적는 것이라서 일부 훼손은 되었지만, 상당수가 남아있었고, 복생은 더군다나 상서의 편집에 참여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없어진 부분은 복생의 기억을 되살려서 회복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황제는 당연히 복생을 불러서 상서를 복원할 것을 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생이 살던 장구(章丘)는 지금의 산동성 제남 부근이고, 황제가 있는 장안은 너무나 머나먼 곳이었습니다. 복생은 나이가 아흔이 넘었고, 지금 나이로 따지면 100세 노인이었습니다.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이젠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말도 모호한 복생, 상서의 복구를 맡은 담당 관리는 처음에는 망연자실했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복생의 딸은 아버지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담당 관리와 복생과 그 딸, 이 역사 복원의 삼총사는 상서를 복원하는 길고 긴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작업이 <복생수경도(伏生授經圖)>라는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한 <사마천>이나, 죽음을 무릅쓰고 상서를 숨긴 고지식한 <복생>같은 사람이 있어 역사의 숨결은 시간을 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예사로 보면 한나라는 전서(篆書)를 지나 예서(隸書)가 유행하였지만,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귀중한 기록들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후 한나라 때, 여러 곳에서 숨겨놓은 죽간들이 등장합니다만, 단지 유물이 있다고 해서 알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복생이 없었다면 상서는 그저 박물관의 박제화된 유물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궁궐이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도 그 의미에 대한 전달자가 필요합니다.

 

교태전 굴뚝도, 의미를 모르고 지나가면 그저 예쁜 굴뚝에 지나지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는 이들에겐, 어려운 나라 살림에도 경복궁을 중건하고자 했던 고종과 기울어져 가던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고 싶었던 흥선대원군의 열망이 천세만세(千世萬歲)라는 외침으로 들려올 것입니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문자는 약해 보이지만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지켜나가려 했던 복생의 백발을 떠올려 보는 것은, 우리 역사를 심하게 흔드는 바람 속에도 교태전 굴뚝의 전서는 더욱 선명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세만세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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