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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정책, 한국경제의 위기 초래할 것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

  • 기자명 정석균 에너지 칼럼리스트
  • 입력 2023.05.08 21:37
  • 수정 2023.05.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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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휘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등 시민단체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앞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23.3.24) [1]
기휘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등 시민단체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앞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23.3.24) [1]

정부는 2023년 3월 21일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이 발표되었다. 지난 정부에서 수립되었던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를 일부 수정하였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실현 가능하고, 감축 가능한 목표로 조정했다고 설명한다. [2]

산업부문 감축 부담을 줄여주고, 그만큼을 원자력 발전과 국외 감축으로 상쇄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전환부문(발전)에서 44.4%, 산업부문에서 14.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비판이 많았다.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5%를 차지하는 산업계의 감축량을 너무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산업계의 볼멘소리를 지나치게 의식한 반면, 쉽게 압박할 수 있는 전환(발전) 부문에만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할당했다는 비판이다. [3]

뒷걸음질 치는 탄소중립 정책

윤석열 정부는 한 걸음 더 후퇴했다. 1차 기본계획안에서 전환 부문 할당량을 45.9% 높이고, 산업부문은 11.4%로 낮췄다.

<표1>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 (환경부) [2]

에너지·환경 전문가 및 국제사회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에 폐쇄한 후 재생에너지의 과감한 확대를 요구했다. 몇 년째 석탄발전을 2030년 이전에 퇴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3]

산업자원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기존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30.2%에서 21.6%로 낮추고,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상향했다. 수명이 만료된 원전을 계속 운전할 계획이다.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 원전을 무리하게 계속 가동하고, 고준위 핵폐기물을 대책 없이 발생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신한울 3·4호기 건설한다고 설명하지만 2030년이후 완공될 예정이다. [3]

이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으로는 RE100 캠페인과 탄소국경세 등 도입에 따른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등이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은 2030년 최소 33% 이상으로 높여야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4]

2022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5대 기업의 전력 요구량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27개 대기업이 RE100을 선언했지만 현재의 에너지 정책으로는 RE100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총생산량과 주요기업의 전력수요 [5]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총생산량과 주요기업의 전력수요 [5]

정부의 이번 발표는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라고 볼 수 없다. 도리어 다배출 기업과 원전업계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2030 NDC를 변경할 경우 비난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반기후·반환경 정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다.

포럼 사의재와 한정애 · 진성준 · 이용선 의원 등이 3월 31일 「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 평가 긴급토론회」가 개최했다.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6]
포럼 사의재와 한정애 · 진성준 · 이용선 의원 등이 3월 31일 「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 평가 긴급토론회」가 개최했다.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6]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된 기후 위기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 것이다. 핵발전을 지지하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기후 위기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거나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기업주들이 현 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7]

정책 추진할 돈도, 조달방안도 없는 부실 계획

이번 계획을 보면 탄소중립기본법 10조에서 기본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정한 재원 조달방안이 누락되었다. 재정 규모도 법에서 정한 20년 간 재정규모가 아닌 향후 5년 간의 재정규모만 포함되었다. 그린피스가 미국 MIT 산하 정치경제연구소에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에만 2030년까지 한 해 78조원(공적자금 14조, 민간자금 64조)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기본계획상 예산은 한 해 평균 18조 원에 불과하니 턱없이 부족한 재원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4]

<표2> 국가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을 위한 재정투자 계획 [2]

다음 정부로 떠넘겨 온 무책임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역사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훑어보자.

1998년 교토의정서가 체결되었다. 당시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어서 온실가스 우선 감축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 산업을 보호하는 약처럼 보였지만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독이 되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 일정이 얼마나 험난한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늦어도 한참 늦게 출발했으니 숨가쁘게 뛰어도 부족할 판이다.

EU, 미국,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 로드맵 비교, 매일경제 2021. 09. 05) [8]
EU, 미국,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 로드맵 비교, 매일경제 2021. 09. 05) [8]

우리나라는 2009년 처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이후 지금까지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감축 목표를 바꾸기만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창했다. 온실가스 배출량(BAU)을 2020년까지 30%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결국 2016년 박근혜 정부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이자 달성 연도를 2020년에서 2030년으로 바꾸었다. [1]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0%를 줄이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방안을 확정했다. 국제사회의 압박 때문에 허겁지겁 발표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이 과학적으로 수립된 게 아니라고 비난했다. 탄소중립이란 것이 우리 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9] 그래서 가장 배출량이 많은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합리적으로 조정했단다.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년 1.99% 줄이고, 2028~2030년 동안 연평균 9.29%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도했던 김상협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은 “국제기구에서도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발휘되는 시점을 2030년 전후로 본다”라면서 “2030년 전후로 감축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변명하고 있다.[1]

탄소중립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 경로는 초반에는 많이 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감축 비율이 낮아진다. IPCC 6차 보고서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보면 초반에(지금 당장) 급격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윤석열 정부는 제 임기 안에 온실가스를 감축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10] 초기에는 과잉 소비하는 화석연료가 많다. 줄이는 것이 수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 마른 수건을 짜야 하는 것이다. 배출량을 줄이기 쉽지 않다.

한국, 기후위기보다 경제위기 먼저 맞을 수도
탄소중립은 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탄소중립은 우리 스스로 정한 과제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강제하는 프레임이다.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고통스럽고 억지로 감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월마트,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자기들에게 납품하는 기업에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상품과 부품을 요구하려 한다. 이 재생에너지에 원자력 발전은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에 대해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하여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8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1톤당 1만5천원 정도이지만 유럽연합에서 10만원대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보호한다며 탄소배출권의 무상 할당 비율을 너무 높였기 때문이다. EU는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한다. 우리나라에 낼 세금을 EU에 내는 꼴이 된다. 관세 때문에 우리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1]

미국까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우리나라 수출은 5%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우리 기업을 온실 안에 가두어 키워온 결과, 탄소배출권 무상 할당을 높인 탓에, 기업들은 에너지 전환시대라는 비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탄소중립, RE100, ESG 경영 등은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만든 프레임이다. 그 대의는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1.5℃ 이하로 억제하여 지구생태계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난도 많다. 과거 탄소배출로 돈을 벌어 친환경 기술을 개발한 글로벌 기업들이 장벽을 치고 개도국의 성장을 막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지구를 살리자는 주장에 반대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아직도 “탄소중립정책이 산업계에 부담을 준다”고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오기 전에 대한민국 경제위기가 먼저 닥치게 될 것 같다. 정책결정권자가 에너지전환 흐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RE100 문제를 다시 한번 보자.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충당 비율이 2022년 기준 2.7%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2022. 9. 15. RE100 참여 선언) 2030년이 되면 애플에 공급하는 삼성전자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부품만 공급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 공장에서는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삼성전자는 미국의 반도체법이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다. RE100을 충족시키려면 국내가 아닌 해외에 공장을 세워야 한다. 2030년 재생에너지 생산목표는 30대 기업의 전력수요를 간신히 충당하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파운드리 반도체 1위 기업인 TSMC의 RE100을 위해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했다.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뒤따라 배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는가?
산업 공동화로 인해 좋은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한편,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대규모 태양광과 육상 풍력이 전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이미 가장 싼 신규 발전원이 되었다.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2027년 이후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용량은 석탄을 제치고 가장 큰 전력공급원이 될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의 기후·에너지 투자 계획에서 풍력·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의 비중이 1280억달러로 300억달러인 핵발전보다 4배 더 크다. [11] 2022년 블룸버그 보고서는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는 경우 풍력과 태양광이 총발전량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12]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이란 사회∙윤리적 책무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 문제다. 병든 지구에서 이윤 추구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결정자가 에너지 전환 시대에 그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난제와 한계만 외칠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재생에너지도 아닌 원자력 발전에 국가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된다.

[참고자료]

  1. 선진국들은 사다리 걷어차는데, 탄소중립 없이 경쟁이 되나, 한겨레신문 2023. 3. 24
  2.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성장 전략 및 기본 계획 (요약), 관계부처 합동, 2023. 3.
  3.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은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다,
    환경운동연합, 2023. 3. 21
  4. 윤 정부 기후정책 문제점 7가지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린피스 2023. 4. 6
  5. 삼성전자 RE100 선언,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 정석균, 미디어피아 2022. 12. 30
  6. 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 평가 긴급토론회 열려, 대한뉴스 2023. 3. 31
  7. 온실가스 감축은 시늉만, 에너지 요금은 또 인상, 노동자연대 2023. 3. 24
  8. EU, 미국,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 과정 비교, 매일경제 2021. 09. 05
  9. 윤 대통령 “탄소중립, 산업계 부담 되면 안 돼”…또 문정부 탓, 한겨레신문 2022. 10. 26
  10. 탄소중립 의지 없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박정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프레시안 2023. 3. 29
  11. 재생에너지 2022 보고서, 국제에너지기구(IEA)
  12.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 보고서, 2022년
  13. 산업계 눈치 본 탄소중립계획, 산업계가 진짜 반길까, 시사인 2023. 4. 20
  14. EU, 탄소국경세(CBAM) 대상 품목 늘린다, ESG경제 2022. 12. 14
  15. 최태원 "탄소중립 규제 걸림돌 해소돼야…정부의 보상시스템 필요", 연합인포맥스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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