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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상 - 간에 기별도 안갔을까?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05.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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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상> 정말 간에 기별도 안갔을까?

 

조선시대에는 조보(朝報)라는 것이 있어서 승정원에서 기록하고 베껴써서 중앙정부의 정보를 지방에 보냈습니다. 중앙정부의 정책외에도 관리의 인사기록,상소, 기타 여러 사회적인 내용도 함께 지방에 공유했습니다. 오늘날의 관보에 해당됩니다.

 

입직승지가 내용 검열을 완료하면, 사헌부 사간원의 기별서리( 寄別書吏)들이 먼저 베끼고, 각 관사의 기별서리들이 차례로 베껴가고, 각 관사에서 다시 베껴 기별군사(奇別軍士)를 통해 지방이나 여러 곳으로 배포했습니다.

연관 시설로 경복궁 유화문 옆에 기별청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날 소식이 다음날 배포됬는데, 급하면 당일 저녁에 받아보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대개 보름 정도면 전국으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 간에 기별도 안간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중앙집권체계의 시스템속에서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수집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을 겁니다. 특히 주요인사의 임면 같은 하마평을 하마비주변에서 수집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지금도 관가의 인사철에 떠도는 소문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많은 내용을 전국으로 빨리 보내기위해 베껴쓰다보니 조보체라고 불리는 초서로 갈겨쓴 악필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해집니다.

현대에도 정보의 수집은 주요사항이라 최근에는 미국 CIA 가 한국 NSC를 도청한 내용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만, 예전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머 도청수준은 아니지만, 조보가 떠돌다보니 타국에서도 그 내용을 수집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일본에겐 조선 내부의 정보가 중요해서 임란 이전부터 각종 간첩(간자)들의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1596년(병신년)에 임진왜란의 화의협상을 위해 명(明)의 심유경과 같이 일본에 갔던 황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신단으로 오사카에 갔을 때, 그곳에서 과거합격자명단을 보았는데, 한양에서 과거 합격자 발표의 방이 붙은 지, 며칠되지 않았다고 하니, 전쟁의 와중에도 과거를 치룬 것도 대단하지만, 불과 며칠만에 정보를 수집한 일본의 정보력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일본의 간자들이나 통관들이 조보를 수집하거나 돈으로 매수했을텐데, 별 주요사항도 아닌 것도 싸그리 모은 것을 보면, 중요 정보들이 얼마나 넘어가서 수집되었는 지 상상도 안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선에 대한 침략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선은 일본에 대한 정보에 무관심하거나 별볼일없는 내용으로 치부해서, 역관들이 수집한 내용도 무시되었고, 심지어 임란 직전의 토요토미에 대한 정보 수집과 평가도 상당히 공허하고 주관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정보가 국력인 것처럼 과거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얼마전 NSC를 도청한 미국에게 “악의적으로 도청한 정황이 없다“ 는 식으로 황당한 말을 하는 안보실 공무원의 이야기는,

도청된 내용이 ‘간에 기별도 안갈만큼’이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정식 발행된 조보(관보)만이 기별(정보)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경복궁 기별청에 집어넣고 묻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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