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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 장마와 막걸리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07.15 09:15
  • 수정 2023.07.1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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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장마와 막걸리

비가 많이 내립니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립니다.

비 피해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데, 나랏님은 관심이 없고 백성들만 모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옛 나랏님은 이런 일이 계속되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하늘이 나에게 이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했습니다. 이런 반성문을 비망기라고 하는데, 누군가 쓰고 있을까요?

요즈음처럼 길게 내리는 비를 흔히 장마라고 하는데, 어원의 논란은 있지만, 대개 장마의 장은 길다는 의미, 마는 우리말의 물에서 왔다는 것이 중의입니다. 길게도 내리는 비란 뜻이겠지요.

어쨌든 비는 가뭄에는 고마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그래서 희우(喜雨)라고 불리기도 해서 창덕궁의 희우루, 망원동의 희우정 이런 이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태종이 비를 기원했는데, 태종이 승하하자마자 비가 내렸답니다, 그래서 승하하신 음력 5월 10일 부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하기도 했답니다. 옛글에도 가뭄에는 久望太宗雨란 글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현대에선 이 태종우를 드라마로 각색해서 KBS <용의 눈물>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매실이 익을 때쯤 길게 내리는 비를 뜻한다는데, 우리는 임금의 이동식 변기를 매화틀, 매우틀 이라 하는 걸 보면 단어의 쓰임은 나라마다 재미있습니다.

비하면 항상 생각나는 실록의 기록은

1395년 4월 20일입니다. 이때 아직 경복궁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임금이 새 궁궐의 양청(涼廳)에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남양백(南陽伯) 홍영통(洪永通)과 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 성여완(成汝完)이 잠저(潛邸) 때의 친구들로서 참여하였다.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이 시(詩)를 지어 올리었다.

“금원(禁院)에 봄빛은 깊고 꽃은 한창인데

옛 친구 불러서 술잔을 드니

하늘마저 때에 맞는 비(時雨)를 내리어

이 몸 또한 우로(雨露)의 은택을 깨달았도다 ” >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을까요? ㅎ 가히 비 오는 날의 최고의 찬사입니다. 비를 보면 이 정도 시는 지어야하는데 ㅠㅠ

이걸 보면 정도전 선생이 맹목적으로 태조에게 충성한 듯하지만, 그해 10월 30일 경복궁 완성 후 어느 잔치에서는 아래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1395년 10월 30일

밤에 임금이 판삼사사 정도전 등 여러 훈신(勳臣)을 불러 술을 마시고 풍악을 잡혔다. 주연(酒宴)이 한창 벌어질 무렵에 임금이 정도전에게 하는 말이,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경 등의 힘이니, 서로 공경하고 삼가서 자손만대에까지 이르기를 기약함이 옳을 것이다." 하니, 도전이 대답하였다.

<중략>

신이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말 위에서 떨어지셨을 때를 잊지 마시고, 신도 역시 상쇄(項鎖)했을 때를 잊지 않으면, 자손만대를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잔칫날 기분 좋은 그 순간에, 왕이 되기 전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집에 있을 때, 정몽주파의 공격으로 실각할 수 있었던 기억과 본인이 나주 등지로 귀양 가서 큰 뜻을 이루려고 참았을 때를 기억하자고 합니다.

조선 건국의 이념이 어디에 있는지 그 초심을 잃지 말자고 한 이야기이겠지요. 이러한 기백과 정신이 조선을 끌어간 힘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전 선생이니 경복궁 완성 날에 전각의 이름을 지을 때, 근정전에서 임금의 부지런함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즉 임금이 <이번 식년시에 초시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라는 식의 관여는 임금의 부지런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 그런 것은 임금의 일이 아닙니다. 어느 회사 대표가 아침마다 탕비실에 와서 종이컵을 몇 개 썼느니 하면서 따지면 그 회사가 잘 될 일이 없을 겁니다. 그건 대표의 일이 아니지요. 자기 자리에 맞는 자기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것을 <조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윗사람이 어떤 조짐을 보이면 아래서는 알아서 그에 맞추어 기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산을 낭비하면 아래는 덩달아 펑펑 쓸 겁니다. 그래서 윗사람은 항상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함부로 표현하려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즉 조짐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의 호칭을 짐(朕) 이라고 했는데, 이는 조짐(兆朕)에서 온 말로 조짐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란 표현에서 나온 말입니다. 위치에 맞는 처신을 잘하란 뜻일 겁니다.

 

이런 장맛비를 뚫고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이 있을 겁니다.

태조와 정도전. 이런 옛이야기도 중요합니다만

경복궁 옆 인왕산 자락의 매동초등학교 출신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소설 <미망>에서

장마를

<인왕산 줄기를 아카시아의 안개구름이 젖비린내를 풍기며 피어오르고 나면 곧장 장마가 지고 여름이었다> 라고 묘사했습니다.

겸재의 인왕제색도와도 데자뷔가 되는 너무도 매력적인 표현입니다.

 

오늘 궁궐에서 그런 풍광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안개구름이 젖비린내를 풍기며 피어오를까요? ᄒ

 

<비 오면 파전에 막걸리>만 떠올리는 천한 저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렵습니다. ^^  다들 비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진, 우문현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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