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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 선물과 뇌물

- 교사들 집회를 바라보며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08.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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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습니다.

생일이든,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선물을 받으면 누구나 좋아합니다.

선물, 주는 이의 마음과 받는 이의 느낌이 같아야 하는데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물의 한자어는 膳物입니다.

특이하게 선(膳)의 원뜻은 양고기에서 출발하여 고기반찬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명절 선물의 핵심은 한우갈비세트 가 주류입니다.

 

지금은 학교교육에서 한자공부가 사라졌지만, 하늘 천 따지하며 외우는 천자문 학습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단어에 한가지 뜻만을 공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글을 외우기는 쉽지만, 한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겠지요.

 

여전히 학자 간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착할 선(善)이라 하는 선의 원래의 의미는 양 떼를 부르는 나팔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양 떼를 잘 불러 모으고 컨트롤하는 목동의 능력, 그것을 잘하는 일이란 의미에서, 어떤 일에 대해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 으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선(善)입니다.

 

그래서 한양을 그린 지도의 이름이 수선전도(首善全圖)입니다. 

 

한양이 최고로 착한 도시라는 뜻이 아니고 으뜸과 모범의 도시라는 뜻에서 온 것입니다. 이걸 자꾸 착할 선이라고만 해석하면 먼가 내용이 틀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는 선(善)입니다. 착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백성이 잘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끌어가는 으뜸의 능력(그것이 善)입니다. 그런 임금이야말로 백성들에게 최고의 선물(膳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경복궁 세자의 공간이 자선당(資善堂)입니다. 경복궁 답사가는 분들이  잘 가보지는 않지만, 동궁의 자선당이란 이름에는  차기 왕이 되는 세자가 그런 능력을 배양하고 길러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단순히 착하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시야가 굉장히 협소해집니다. 무능이 악(惡)이란 뜻은 아니지만, 지도자는 유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즈음의 나라꼴은 무능이 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자가 된다는 것은 왕위에 오를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왕은 나라 전체와 백성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조선은 세자시절부터의 교육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임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임금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 그래서 세자가 되면 다양한 교육을 받습니다. 품성부터 시작해서 학식까지, 그래서 세자에겐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자가 성균관에 가서 입학례를 올리는 뜻입니다. 스승을 모시는 예, 이것을 속수지례(束脩之禮)라고 합니다. 즉 세자도 입학례를 할 때는 수업료를 들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도 예물을 가지고 갑니다. 속수는 일종의 육포 묶음 같은 것을 뜻합니다.

 

논어에는 자왈(子曰) -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합니다. 즉 '나는 속수의 예를 행한 사람이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즉 공자님도 수업료만 들고 오면 누구든 가르치셨다는 뜻입니다. ^^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고대의 예물 중 속수가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는 겁니다. 즉 최소한도의 예를 취하면, 취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속수라는 이 기본적인 선물(膳物)이 그 본연의 선를 넘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면 뇌물이 되는 것이겠지요.

 

고려 때 이규보라는 문인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이름이 인저(仁低)였는데, 과거에 자꾸 떨어지다 나중에 합격하자 규성(奎星, 文을 상징)의 도움이라 생각해 이름을 규보(奎報, 규에 보답한다)로 바꾸었다 합니다.

 

하여튼 이 분이 대학자가 되고 나서 배우기를 청하러 찾는 이가 많아졌겠지요? 당시에 자기 집 강아지에게 쓴 다소 유머러스한 시가 있는데, ‘멍멍아, 누가 쟁반에 고기나 과일을 담아 오거든 절대 짖지 마라’ 머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속수지례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조선은 군사부일체라 하여 스승의 권위를 존중하고 받들었습니다. 임금이 대면 하대를(누구든 아랫사람 처럼 말을 놓죠) 하지만 정승과 세자시절의 스승에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근래 경복궁 주변에서 몇만 명씩 시위하는 학교 선생님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배움과 가르침이 너무 저잣거리의 어물전 마냥 널브러진 형상입니다.

​동궁 이야기를 꺼낸 것은 경복궁 계조당의 완공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계조당은 동궁의 권역이었던 적도 있고 철거된 적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것을 복원하고 있어서, 그 복원과 함께 동궁에 대한 내용과 철학도 다시 돌아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옛사람들의 교육과 수행의 공간인 동궁이,

오늘날에도 단순히 건물의 외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의미를 돌아볼 기회가 된다면,

스승들의 내일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얼마 전 배롱나무가 보고 싶어 찾아간 개심사의 멋대로 굽어진 기둥을 보니,

<훌륭한 목수 곁에 굽은 나무가 많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다 쓸모가 있는 선물입니다.

 

이현진 - 우문현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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