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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의 지역 탐방

-덜 알려졌지만 더 알려졌어야 할 것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09.08 21:04
  • 수정 2023.09.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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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런 블랙 유머가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국토의 작은 군 단위의 지자체들은 면적이나 인구수 등에서 존재감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 소홀히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그래서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관광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괌심을 받지 못한 지자체가 많다. 그러나 구석구석 살펴보면 상당한 수준의 문화 유적이 존재하거나, 지역만의 독특한 가치가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시그널은 소규모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화 자산을 발굴하는 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덜 알려졌지만 더 알려졌어야할 문화 유적>

증평 미암리 사지 석불입상

 

불교는 오랫동안 전통사회의 핵심 종교였다. 삼국시대에 진입한 이후로 다양하게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발전해왔다. 대부분 종교가 그렇듯이 백성들의 삶이 평탄하지 않을수록 종교는 그 힘을 발휘한다. 오랫동안 중국의 문을 두드려왔던 불교가 중국에서 번성한 시기는 흔히 삼국지로 불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였다. 조조 유비 손권의 권력투쟁 속에서 온 세상이 전쟁터이고 지옥이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기대하고 찾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100년이 넘는 포교의 어려움을 겪었던 불교가 이때 중국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오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후삼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일반 백성들은 새로운 구원자를 찾게 된다. 그것은 미륵 사상이었다. 일종의 메시아이다. 이 험악한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신라말 고려 초에 등장하는 거대한 미륵불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누가 국가권력을 쥐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은,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 배고픔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이러한 바램은 국가 주도의 대형 석불이나, 때론 마을 단위의 중소형 석불을 등장하게 한다. 다소 투박하고 세월의 풍파 속에 깎이고 마모되었어도, 그 석불에는 힘없는 백성의 삶과 진실한 소망이 담겨 있다.

증평은 작은 지역이다. 인구가 4만도 넘지 않는 11(증평읍과 도안면)의 청주와 괴산 사이에 낀 듯한 형세의 지역이다. 괴산군에서 분리된 것이 2003년이니 여전히 괴산과 증평이 이미지는 중첩되어 있다. 과거에는 37사단이 있어, 증평에서 입대하여 훈련받는 군인들이 있기도 했는데 현재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증평읍을 동서로 가르며, 서울의 한강처럼 보강천이 흐르고, 그 물줄기는 하류에서 미호천을 만나 금강으로 합류한다. 보강천 너머 송산리 일대는 새로 신축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어 동쪽의 구시가지와 대비를 이룬다.

그 송산리 한구석에 잔잔한 미소의 석불이 있다.

증평 미암리 사지(寺地)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과거의 기록에는 괴산 미암리 사지라는 글이 나오는 것은 행정구역이 바뀐 지 얼마 안됐음을 증명한다. 일제강점기 자료에는 괴산군으로 등장한다.

미암리 사지(寺地)이니 폐사된 절터에서 나왔음을 말하고, 미암리는 송산리 바로 옆이니, 근처 미암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는 뜻이다.

석조관음보살입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머리 보관의 중앙에 화불(아미타불?)이 새겨져 있고, 손에 연꽃을 들고 있어서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륵불로도 여겨진다. 마을의 옛 이름이 미륵댕이로 불려왔다고 하니, 그 형태와 상관없이 미륵불로 여겨진 듯하다.

벌판 한 곁으로 수령이 30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의 가지가 지붕처럼 석불을 감싸고 있고, 그 아래에 보호각 안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인데 당당하다. 그런데 잘생겼다.

측면에서 보면 적당히 배가 나온 체구가 큰 중년 아재 모습이기도 해서, 미소가 머금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이러한 석주형(돌기둥 스타일) 불상은 고려 초의 특징이다.

석불 앞마당으로는 축대를 쌓아 만든 제단 형태의 공간이 있는데, 우물 같은 것이 있고 제를 올리는 공간이 잘 정돈되어있다.

이런 형태로 보면 느티나무 고목은 마치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처럼 보이고, 그 당산나무 밑에 석불이 계시니, 불교와 토착 신앙이 결합한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낯설지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종교를 떠나 주섬주섬 물 한잔이라도 올리고 무엇이라도 빌고 싶어진다. 그래서 석불 발밑의 작은 상에는 물병이며 소주며, 공양미 등 소소한 예물이 올려져 있다.

이런저런 푸념 섞인 이야기들을 묵묵히 잘 들어주시는 동네 어른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얼굴은 둥그런데 턱살이 두툼하게 있어 옅은 미소가 친근하게 배어 나온다. 눈이 퉁퉁 부은 듯해 간밤에 라면을 드시고 주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뚜렷한 안광이 분명한 성격을 드러낸다.

서울 나들잇길에 눈감으신 적이 없었을 터이니, 애석하게 잘려나간 코는 누군가의 아들을 위한 희생물이었으리라. 현재는 시멘트를 코 모양을 적당히 오뚝하게 만들어 붙여 놓았다.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잡아든 연꽃의 봉오리는 금방이라도 활짝 피어날 듯하고, 속의 군의(裙衣)를 묶은 매듭은 금방이라고 당기면 풀어져 흘러내릴 것처럼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옷자락의 주름을 보더라도 상당한 수준 장인의 불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등 뒤의 옷 주름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함은 대충대충 보이는 곳만 다듬은 다른 석불과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그래서였을까? 주변을 떠나고 싶지도 않고, 슬쩍 등을 기대어 뭔가 친근함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고양이가 믿는 집사를 만났을 때 몸을 비비적대는 것처럼, 그렇게 든든하고 믿음직한 석불이다. 관음이면 어떻고 미륵이면 어쩌랴. 바라보이는 보강천은 여전히 잔잔하게 햇빛을 반사하고 있고, 석불 옆의 논두렁엔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풍요를 기원하는 추석이 곧 다가오고 있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산 1-5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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