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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인으로 돌아보는 역사 김정희

-김정희의 명문가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3.11.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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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인으로 돌아보는 역사

김정희는 어떻게 명문가의 후손이 되었나?

병자호란과 소현세자의 심양생활을 중심으로 길채와 이장현의 연정이 전개되는 드라마 연인이 마무리로 달려가고 있다. 극 후반으로 가면서 역사적 사실보다는 연인관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소 신파로 흐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쨌든 극 중에서 홍타이지가 사망하고 그 아들 복림이 등극하여 순치제가 된다. 나이가 어리므로 홍타이지의 형제인 9 왕자 도르곤이 섭정을 한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2차 귀국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현세자에 대한 인조의 경계심은 극에 달해간다.

극중 귀국하는 소현세자 - MBC 드라마 연인
극중 귀국하는 소현세자 - MBC 드라마 연인

 

사실 도르곤과 소현세자는 1612년 동갑내기이다. 더군다나 심양으로 볼모로 갈 때 수행하던 도르곤에게 인조가 세자의 안위를 부탁하는 장면이 실록에 나올 정도이니 9 왕자 도르곤과 소현세자는 상당한 친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소현세자의 심양생활과 청나라 실세들과의 관계에 대해 인조는 자신이 청에 의해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소현세자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쌓게 된다.

 

결은 다르지만, 의주로 몽진하며 찌질했던 선조가, 분조를 이끌며 백성의 신망을 얻던 광해군에 대해 가진 일종의 자격지심과 비슷한 감정일 수도 있다. 찌질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조 역시 유사한 감정을 소현세자에게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감정은 훗날 소현제자의 완전한 귀국과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독살설 논쟁이 전개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명은 1644년 숭정제가 자금성 북쪽 경산공원에서의 자결하면서 멸망하게 된다. 대순국의 황제로서 이자성이 천안문으로 들어가 숭정제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준다. 그러나 산해관 전투에서 오삼계와 청의 연합군에 패한 이자성은 40여 일 만에 자금성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친다.

이때 묘하게도 본인이 근무처로 삼았던 무영전만은 화재를 피했다. 164452일 하루 차이로 이자성을 놓친 도르곤은 화재를 피한 무영전에서 개선식을 하며 청의 새로운 도읍으로 북경을 선언했다. 이날 소현세자가 함께 있었다.

자금성 무영전 - 숭정제와 이자성, 도르곤 소현섿자와 관련있다
자금성 무영전 - 숭정제와 이자성, 도르곤 소현섿자와 관련있다

 

소현세자는 한동안 자금성에 머무르다가 심양으로 돌아온다. 이때 머문 곳이 문연각이라고 알려져 있다. 훗날 북경에 다니던 사신 행렬은 당시 소현세자가 머무른 곳이 어딜까 하며 궁금해했지만 청나라 때의 자금성은 명과는 변화가 있어서 정확한 장소를 찾지는 못했다.

 

16448월 심양의 청 황실이 북경으로 이동함에 따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일행도 북경으로 자리를 옮겼다. 9월부터 시작된 북경 생활에서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난 11월에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선언한 도르곤이 세자의 귀국을 허용,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오고 봉림대군은 남았다. 봉림대군, 훗날의 효종은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에 귀국했다. 소현세자보다 훨씬 더 오랜 북경 생활을 통해 청의 강건함을 보았을 터인데, 효종은 분노에 차서 북벌을 논하고 계획했다. 그러나 조선이 청을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현세자의 귀국 이후 급작스러운 죽음은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는 독살설은 수그러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현세자 사망 이후의 석연치 않은 과정, 부인 강빈의 옥사, 살아남은 3 손자들에 대한 처분, 조카를 제친 봉림대군의 세자책봉 등이 여전히 인조에 대한 논란거리로 남았다.

 

특히 효종은 강빈을 역빈(逆嬪)으로까지 부르며 부담스러워했다. 효종은 등극과 함께 강빈과 관련된 문제는 여하튼지 간에 거론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아무래도 본인 즉위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로 금기시했던 것 같다.

 

나라에 천재지변이 계속되면 임금은 하늘의 소리라 생각하고 자신의 다스림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신하들에게 듣기를 청했다. 이것을 구언(求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구언에 대한 신하들의 대답을 응지상소라고 한다.

 

효종 때 연이은 재난에 대해 효종은 구언을 청했고, 신하들은 상소를 올렸다. 대부분 신하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황해감사 김홍욱이 효종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상소를 올린다.

 

<재난의 원인을 따지다 보니 지금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강빈의 옥사이며, 내용도 이상하고, 어린 자식들에 대한 흉악한 처리까지 온통 억울함뿐이니 이에 대해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효종을 몰아세웠다. 강빈옥사만큼은 거론하지 말라 했던 효종에게 김홍욱의 상소는 <세상 제일 억울한 일이 강빈옥사이다>라며 효종의 정통성의 문제를 치고 올라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너에 몰린 효종은 결국 <모골이 송연하다>며 김홍욱을 국문하고 장살을 시킨다.

 

실록은 김홍욱에 대해 <임금의 분부에 따라 진언했다가 마침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니 듣고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기록했다.

말하라고 해서 이야기했는데 말했다고 때려죽이다니……. 전해지기로는 <언론을 가지고 살인하여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 >라는 유언이 있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의 최후를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판단해야 된다고 했다.

훗날 송시열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효종은 김홍욱을 복권하고 신원해준다. 이로 인해 김홍욱 집안은 의로운 죽음이 있는 명예로운 집안으로 다시 기록되고 역사에 기억된다. 그가 바로 경주김씨 김정희의 7대조이다. 이러한 명문가의 인연이 영조가 김홍욱의 후손인 김한신을 사위로 삼게 하고, 딸인 화순옹주의 열녀문까지 이어지는 오늘날 예산 추사고택의 안내판을 그려지게 했던 것이다.

 

구언이라는 시스템과 언관으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낸 김홍욱, 드라마 연인을 보며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온 것은 근래 나라 안팎이 언론의 문제로 시끄러운 것과 무관하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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