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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과거시험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4.02.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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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가 있다.

 

우리는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기억하는 수나라,

수양제와 대운하 그리고 고구려와의 싸움, 이런 거로 기억하지만 실은 수나라는 중국에서 주요한 분기점의 나라이기도 했다.

 

우선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오랜 전란으로 흩어진 중국을 통일을 시켰다.

물론 통일시키느라 진을 다 빼는 바람에 곧 당나라에 천하를 넘겨주고 말았지만…….

 

두 번째 대운하이다. 사실 중국은 황하와 장강이라는 두 개의 큰 강이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지리적 분리는 오랜 기간 중국의 남북을 문화와 풍습, 생산력 등 다양한 차이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운하는 이러한 중국의 남북을 하나로 이어놓는 대역사였다. 자연환경의 분리를 인공으로 만든 운하를 통해 이어줌으로 인해 분리된 남북이 지역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 대운하의 또 다른 측면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진정한 통일국가의 발판을 열었다.

 

또 하나는 과거제도의 시행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관료제에 흙수저들의 길을 열어놓은 것, 즉 누구든 노력만 하면 관직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제도였다. 이것이 수나라 수문제의 뛰어난 업적 중 하나였다.

 

이 과거제를 고려 광종 때 받아들여 우리도 시행하게 되었다. 물론 다양한 부정부패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과거제도 자체가 갖는 의미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과거는 크게 3단계의 시험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마지막 단계를 전시(殿試)라고 한다.

초시 복시 등 기초 선발단계를 거쳐 최종으로 33명을 뽑고, 33명이 임금 앞에서 치루는 일종의 논술시험이 전시이다.

전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등수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갑과 을과 병과의 3종류로 등수를 매긴다. 우리가 흔히 장원이라고 부르는 장원급제는 이 전시의 1(갑과 1)을 말한다. 장원급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 처럼 입신양명과 새로운 세상을 보장받기도 했다.

 

전시는 대개 임금이 큰 주제를 내리면(이를 책문이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답변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를 대책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용어 중에 <빨리 대책을 세워라>하는 대책의 어원이 바로 과거의 전시이다.

 

대개 책문은 당시의 현안을 중심으로 임금이 선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안에 대해 젊은 선비, 관원들이 다양한 지혜를 모아 대책문을 작성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정책이 수립, 반영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즉 단순한 시험이라기보다는 국가 대사를 겸허히 논의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공무원들이 이런 시험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창의적인 답변을 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어쩌면 현실은 무시하고 상관의 입맛에 맞는 답변만을 써낼지도 모른다. 최근 엑스포 선정과정에서의 모습을 보면 단지 기우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입신양명을 정하는 이 중요한 시험에서, 대부분 정답을 만드느라 고민하는 와중에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은 선비가 있었다.

 

광해군 때의 일이다.

세자시절에 임진왜란을 겪고, 선조가 막판에 얻은 적자(영창대군)로 인해 등극에 고생이 많았던 광해군, 전란으로 인한 나라를 복구하고, 피폐화된 백성의 삶을 달래고 국정을 이끌어야 했던 광해군의 고민이, 광해군 3년 별시의 책문으로 등장했다.

 

광해군은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인재 등용, 국론 분열 해소, 공납제도 개선, 토지제도 정비 등>이라며 백성의 부담을 덜어줄 현안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런데 임숙영(15761623)이라는 선비는 출제된 문제와는 다른 엉뚱한 답안을 제출한다.

그는 임금의 책문이 시급하지만, 원칙에 맞게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왜 나라의 진짜 우환과 조정의 병폐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의논하지 않습니까?> 라며 엉뚱한 답을 올렸다.

.

시험 문제와 상관없는 답이라니,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현대로 따지면 사법고시 최종시험에서 이런 답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임숙영의 답안지는

나라의 진짜 우환과 조정의 병폐는 <중궁(中宮)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고, 언로(言路)가 막혀있고, 공정한 정치가 행해지지 않아서> 라며, 이런 문제는 모두 임금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폭탄을 날렸다.

 

여기서 중궁은 왕비인 중전을 뜻하지만, 내명부(內命婦)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광해군 초기후궁들이 왕의 총애를 업고 청탁 등 국정에 자주 개입하니, 내명부의 기강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다.

2024년의 대한민국이 데자뷔 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시작된 글이 척족의 횡포 운운하며 다양한 형태로 당시 임금이었던 광해군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임숙영이 탈락한 것이 아니고 당시 시험관이었던 심희수가 슬쩍 병과에 합격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이 관료제의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500년 유지할 수 있었던 큰 힘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나중에 이 답안을 받아보게 된 광해군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장살이라도 시킬 만큼 화가 치밀었을 텐데, 실록은 그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전시에서 임숙영의 글이 방자하다 하여 방목에서 삭제하게 하다. 광해 3317>

광해군은, <과거는 그에 맞는 형식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별도로 제목을 적어 방자하고 패악한 말을 했는데 합격시키니, 그의 임금된 자, 즉 내가 얼마나 괴롭겠냐, 합격자 명단에서 삭제하라>고 명을 내린다.

 

왕조사회를 생각하면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기도 한데,

이러한 광해군의 지시에, 사관은 국가가 망함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충직하고 곧은 말을 비방이라고 하여 도리어 엄중히 책망하고 삭제의 벌을 내렸으니, 위태롭고 망하는 화란이 조석에 닥치더라도 누가 말을 하여 자기 몸을 위태롭게 하겠는가. 이처럼 하고서 망하지 않는 자는 드무니 통탄을 금할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이며 저항을 시작한다.

 

그리고 3개월을 임금과 신하들이 임숙영의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지속한다.

그리고 논란 끝에 이항복 등의 중재로 결국 광해군의 뜻은 꺾이고 임숙영은 급제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조선은 가능성이 컸던 나라이다.

 

 

리더쉽이란 무엇인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임금이, 리더가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듣기 좋은 주변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정작 다양한 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심해야 할 것과 부지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구별하고 있는지,

10여 년 후 쫓겨난 광해군이 2024년의 대한민국에 다시 데자뷔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문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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