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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창과 소리명창

- 민주당을 생각한다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4.02.20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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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명창과 소리명창, 무엇이 중요한가?

 

추사 김정희집안이 명문가가 된것은 7대조인 김홍욱(金弘郁) 때문입니다.

​주로 삼사에 근무하며 언관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한 그의 삶은 여러자료에 많지만 그가 역사의 중심에 선 것은 효종대의 일입니다.

형인 소현세자의 죽음, 형수인 강빈의 옥사, 조카들의 죽음 등의 과정속에 등극한 봉림대군 효종은,

임금이 되고나서 강빈옥사의 일은 거론치말라고 금합니다.

이는 본인의 왕으로서의 정통성과도 연관이 되있기때문입니다.

효종 5년쯤 곳곳에 재해가 발생하여 백성의 삶이 어려울 때

효종이 구언(求言)을 하고 이에대해 신하들이 응지상소(應旨上疏)를 올립니다.

이때의 김홍욱의 상소내용이

< 조정 신하들이 소를 올렸는데 한낱 형식적인 일이었고, 이렇게 하고서 재변이 멈춘다는 것은 어림없다. 내생각에 가장 억울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강(姜)의 옥사이다>

결국 효종의 아킬레스를 건드린 것입니다.

그로인해 효종이 친국을 하고 김홍욱은 효종의 노여움에 결국 장살을 당합니다.

이 친국중에 김홍욱이 던진 이야기가 의미심장합니다.

대신과 삼사들에게는 '어찌하여 할 말을 말하지 않는가'라고 꾸짖었고

효종에게는 ‘ 옛부터 말한 자를 죽이고도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느냐? 내가 죽거든 내 눈은 빼내어 걸어 두면 나라가 망해 가는 것을 보겠다’ 고 외쳤습니다.

결국 장살과 삭탈로 집안이 망했지만

효종대 송시열등을 등용할때 선행조건으로 김홍욱의 신원을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김홍욱집안이 명문이 되고

이로인해 후대에 영조와 혼인관계를 맺고 이후 김정희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즉, 목숨을 던지며 직언하던 언관의 정신과 삶이 그나마 어려웠던 조선을 끌어가는 중요한 힘이기도 했습니다.

의로운 죽음 하나, 우리 집안에 있는가? 이게 명문가의 척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효종에게 상소한 김수항의 글이 또 명문입니다.

<임금이 재해를 걱정하며 궁궐 수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직언을 구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위로 보고 아래로 살펴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달라진 모습이 없으니,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 것이고 재해는 날로 더하고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며 김홍욱의 죽음이 오래지않았는데 거리낌없이 상소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 정신이 후손 김창집등 6명의 아들, 육창으로 이어져 조선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갑니다.

- 누구나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관점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가 소통의 출발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왜곡이 아니고 공유와 오픈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귀를 열고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귀명창이 있어야 소리명창이 더 발전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현진/우문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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