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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각자도생의 시대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4.03.18 10:08
  • 수정 2024.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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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애가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봉합하러 갔다.

다행히 신경 손상도 없고 상처가 깊지도 않아 흔히 꿰맨다고 하는 상처 봉합을 하면 된다고 했다.

문제는 피 흘리며 놀라서 간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본인들이 시술하지 않는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시술 담당의가 없어서라고 했다는데, 이것이 최근의 의료문제 때문인지,

정형과 성형의 치료에 관한 영역문제인지는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지만,

결국 응급차를 타고 시술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했다.

영화를 보면 일반 바늘로도 상처를 봉합하는데,

이런 간단한 치료마저도 몇 시간을 헤매다 보니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일반인의 생활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기가 도래했는가 싶기도 하고.

어떤 의학 드라마에서는 외과 수술 연습한다고 바느질도 연습하고 하던데

이제 스스로 상처 봉합술을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지금이야 아프면 가까운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가면 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전문가의 진찰과 처방을 받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비단 조선 시대뿐 아니고 의료보험이 완비되기 전인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보통 사람들이 전문가의 치료나 처방을 받기가 비용이나 접근성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군대 유머로 <배 아플 때 빨간 약을 바르면 낫는다>는 말이 있는데, 5, 60년대에는 병자들의 치료를 위해 무당을 찾거나 무속의 힘을 비는 일도 많았다.

 

조선 시대의 평민들도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간단한 약재 만들기나 치료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일이었다.

약재도 구하기 어려워, 힘없는 자들은 스스로가 살 방도를 찾아야 해서, 약이 될만한 약초를 직접 심거나(약포, 藥圃), 산에서 약초를 캐거나(심마니), 서로 쓸만한 약재를 나누는 일도 많았다.

이러한 민간의 자구 노력은 임진왜란 이후 경북 상주에 최초의 사설 의료기구인 존애원(存愛院)이 설립되게 했고, 찾아오는 이가 늘어나 숙박 시설까지 생겨서, 결국 약국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경북 상주,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
                                                                경북 상주,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

약국(藥局)이나 약방(藥房)은 원래 궁궐의 내의원 별칭이었는데, 조선 후기엔 민간약국이 번창했다.

주로 을지로 근처에 많았다던데, 오늘날 종로5가 근처의 약국 거리를 보다 보면 의료분야의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의원을 상징하는 편액중 하나, 임금을 나타내는 글자가 살짝 높다
내의원을 상징하는 편액중 하나, 임금을 나타내는 글자가 살짝 높다

 

참고로 궁궐 내의 약국 관리의 실무 직급이 봉사(奉事)였다. 심청전의 영향으로 심봉사를 떠올리다 보니 봉사는 시각장애인을 뜻하는 속어로 알려져 있는데, 봉사는 원래 관직이다. 즉 심학규의 관직이 봉사, 심봉사였던 것이다.

대개 조선 시대에 관상감 같은 곳에서 시각장애인을 데려다 봉사직급으로 기용하기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장점을 살리려 했다.

대법원 앞에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데, 진실은 외면의 편견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통하여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에도 어떤 신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신 다른 장점을 찾아 발전시켜 감으로써 극복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말을 못 하는 이들을 벙어리라고 했는데, 춥다고 겨울에 끼던 <벙어리 장갑>이란 말은 차별 문제가 있던 표현이다. 북한은 일찍부터 <통장갑>이란 표현을 해왔다고 하고, 요즈음은 우리도 <손모아장갑, 엄지 장갑>이라며 다른 표현을 찾고 있다. 이런 일이 소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소외계층에 대해 조금씩 다른 시선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항에서 나오다 보니 <유아차 보관하는 곳>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무심히 사용하던 유모차란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상처 봉합이야기를 하다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백성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찾게 되면 국가의 역할이 의심받고 있다는 뜻이다.

앗, 사천포로 빠지다도 지역에서 수정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이현진 우문현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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