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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재] 러시아 음유시인 불라트 오쿠자바

■ 정진택의 음악산책 6회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01.20 14:16
  • 수정 2020.03.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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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유시인 불라트 오쿠자바

정진택/큐레이터

조지아는 우리에게 낯선 나라다. 그루지야, 조지아 등 여럿으로 불린다. 원래 이름은 ‘샤카르트벨로’다. 이란, 터키, 러시아 틈새에서 나라와 종교 정체성 유지가 어려웠다. 20세기 초반 소련에 병합되었다. 그랬다가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독립한다. 조지아 사람이었던 스탈린은 오스트리아 출신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조지아를 합병하고 홀대했다. 스탈린만큼이나 러시아에 영향력 있는 조지아 사람이 또 있다. 문인이자 음유시인인 불라트 오쿠자바(Bulat Shalvovich Okudzhava)다.

조지아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스탈린 시대에 총살당했다. 그의 아르메니아인 어머니는 유형에 처해졌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 조지아에서 고아로 자랐다. 그는 불안한 신분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17세에 적군(Red Army) 일원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병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전쟁은 그에게 깊은 기억은 남겼다. 그의 많은 노래에는 전쟁의 슬픈 기억들이 스며있다. 1960년대 중반 발표한 “Good bye, Boys”는 아직도 수많은 어머니의 심금을 울린다.

ДИНА ГАРИПОВА – До свидания, мальчики / DINA GARIPOVA – 아이들아, 안녕 Goodbye boys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오쿠자바는 지방학교 선생과 신문사 기자생활을 전전한다. 스탈린이 죽고 그의 부모가 복권되자 공산당에 가입했다. 유명 문학지 편집 등 문화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시인, 소설가로 문학적 성공을 이루기 시작한 그에게 노래는 운명처럼 다가온다. D,C,G 단 세 개의 기타 코드, 그것도 여섯 줄 중 두 개 현만 사용한 러시아식 연주만으로 그의 노래는 빠르고 넓게 퍼져나갔다. 그 후 그의 시와 산문, 노래가 어우러진 “오쿠자바 현상”이 등장한다. 지적인 자작시에 단순한 음률을 붙인 그의 노래는 60년대 초 러시안 포크송 ‘바드(bard)’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불라트 오쿠자바 Песенка О Московском Муравье  모스크바 개미의 노래 (1959년)

 

노골적인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반전과 자유주의 숨결이 깔린 그의 노래는 늘 소비에트 당국을 불편하게 했다. 오쿠자바 노래의 첫 녹음이 1968년 프랑스에서 발표되고 1970년대 들어 독일, 폴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자 소련에서도 방송이 허용되었다. 이미 지식인층을 필두로 대중들은 그의 많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러시아어를 쓰는 전 세계의 슬라브 디아스포라들에도 그의 음악은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의 시와 소설은 뛰어난 작품성과 정치적 비판 사이에서 소련 문화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 와중에 50여 편의 영화음악 70여 곡을 만들었다. 소련의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인 “사막의 하얀 태양(White Sun of the Desert, 1969)” 음악 가사도 그의 작품이다.

* 여기선 영화음악 중 널리 알려진 엘레나 깜브로바의 가을비(Елена Камбурова – Дождик осенний 불라트 오쿠자바 작시, 이삭 쉬바르츠 작곡)를 소개한다.
1984년 블라디미르 싸빌리예프 (Vladimir Savelief) 감독의 ‘프라카스 장군’ 삽입곡.

 

인류 역사상 정치가 끝내 문화를 이긴 적이 있었던가?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친 소련의 러시아 이행과정에서 오쿠자바의 음악과 문학이 더욱 생명력을 얻게 되자, 1993년 그의 자전적 소설 “막 내린 극장(The Closed-Down Theater)”은 최고 권위의 러시아 부커상을 받게 된다. 배경은 우리나라나 미국 포크송과 그 대표적 아티스트의 삶과 흔적이 닮은꼴을 이루며 역사에서 변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오쿠자바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온다.

 

불라트 오쿠자바 Я пишу исторический роман 나는 역사적인 소설을 쓰고 있다 (1975년)

 

 

1999년 러시아의 불라트 오쿠자바 기념우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오쿠자바 추모 동상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wanjeong.net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글쓴이: 정진택

학예사(큐레이터)로 고미술 전시분야 전공입니다. 우리음악 탈춤 영화시나리오 등에 조예가 깊으며 우리음악과 세계음악 특히 제3세계 비주류음악에 대해서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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