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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재] 이민자, 노예, 노동자의 노래 – 아메리칸 포크 뮤직 (1)

■ 정진택의 음악산책 7회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02.20 11:55
  • 수정 2020.04.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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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노예, 노동자의 노래 – 아메리칸 포크 뮤직 (1)

정진택/큐레이터

 

60년대 말부터 우리 가요계에 조금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살아가는 얘기를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에 담은 노래가 대학가나 술집 젊은 노래꾼들을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 사람들은 이런 노래에 ‘포크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민속 음악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도 그 이름은 별 저항 없이 불렸다. 그 노래들은 작곡 능력이 있는 소위 싱어송라이터라는 가수들이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사회나 정치, 기득권층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런 몇 가지 요소는 당시 봇물 터지듯 밀려든 미국 문화 한 귀퉁이에 자리했던 아메리칸 포크 뮤직의 모습을 닮았다.

미8군 쇼 무대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직간접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그 음악을 아예 번역, 번안해서 불렀기에 포크송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메리칸 포크 뮤직의 연원이나 흐름을 살펴보면 우리 포크송에 대한 영향과 연관성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포크가 미국의 길지 않은 역사에서 배태된 문화 중 꽤나 뿌리가 있고 바탕이 있는 문화 장르임을 깨닫게 된다. 유럽계 이주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식민지 시대와 독립혁명기 대부분 미국 포크 뮤직은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유래됐다. "바브라 앨런(Barbara Allen)"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전해진 인기 있는 전통 발라드다.

Art Garfunkel - Barbara Allen 사이먼 앤드 가펑클 멤버 아트 가펑클의 아름다운 “바브라 앨런”

 

그러나 자유 이주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노예무역에서 최대 희생자인 아프리카계 아메리칸들은 자신들 고달픈 삶을 흑인영가(Spirituals)나 가스펠로 위로받았다. 노예제도와 해방,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장르는 아프리카 민속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토속 종교에 기독교 신앙과 성서의 텍스트가 결합되었다.

12 years a slave -choir song-“roll jordan roll” 영화 ‘노예 12년’ 중 “소용돌이쳐 흘러라, 요단강”

 

노동요(Work songs)는 미국 포크 뮤직의 가장 중요한 갈래이다. 포크 뮤직은 기본적으로 노동계층의 음악이었다. 뱃사람들 뱃노래(Sea shanty)나 카우보이 노래, 철도 노동자들의 노래는 미국 포크 뮤직의 현재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바탕이 된다. 젊은 카우보이의 죽음을 노래한 "카우보이 애가(Cowboy's Lament)"는 18세기 후반 아일랜드 민요에서 유래되었고, "존 헨리 발라드(Ballad of John Henry)"는 철도 노동자이며 흑인 민중의 영웅 ‘강철운전사’ 존 헨리를 기린 노래다(강철운전사steel-driving man란 철도 터널을 뚫을 때 폭발물을 암석에 박기 위해 강철 드릴을 바위에 망치로 치는 중노동자였다).

Burl Ives - Cowboy's Lament 벌 아이브스의 “카우보이 애가(哀歌)”

Woody Guthrie -Ballad of John Henry 미국 포크 뮤직의 아버지 우디 거스리의 "존 헨리 발라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은 아동노동 폐지와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과 파업을 시작한다. 동시에 포크 음악이 본격적으로 사회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노동자와 포크 싱어들은 교회와 노조회관에 모여 거친 노동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노래를 함께 부르고 배웠다. 조 힐Joe Hill은 초기 포크송 작곡자였으며 노조 운동가였다. 찬송가 가사와 곡조를 노동가요로 바꾼 그의 노래는 노조 모임과 파업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1970-80년대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There is Power in a Union (Joe Hill) - 미국 초기 노조 IWW(세계산업노동자동맹, 일명 워블리스)의 활동가 조 힐이 퍼뜨린 노래로, 조 힐은 1915년 살인혐의로 사형당한다.

 

1차대전 전후 미국경제가 호황을 맞이하면서 포크 뮤직의 사회적 역할은 주춤한다. 하지만 오히려 로큰롤, 리듬앤블루스, 재즈 등과 교류하면서 음악적으로 풍부해지고 다양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드디어 1920년대 말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포크 뮤지션들은 일자리를 잃은 떠돌이 모습을 하고 뉴욕, LA, 시카고 등지로 그들 음악을 전파하러 길을 나선다. 포크 뮤직은 이제 서민 노동계층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문화가 된 것이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또한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했던 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wanjeong.net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글쓴이: 정진택

학예사(큐레이터)로 고미술 전시분야 전공입니다. 우리음악 탈춤 영화시나리오 등에 조예가 깊으며 우리음악과 세계음악 특히 제3세계 비주류음악에 대해서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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