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본문영역

백악산 너머 삼각산을 보며 성북동(城北洞) 옛길를 거닌다 [최철호 칼럼]

  • 기자명 양동균 명예
  • 입력 2018.11.27 14: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 백악산 도성 밖 아름다운 마을_성북동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소박하고 조용한 성(城)너머 마을 ,삶의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준다. 백악산과 삼각산 사이 산과 산이 이어지는 곳에 마을이 있다. 예로부터 양지마을로 산세와 지세가 좋은 큰 동네이다.

 

성북동(城北洞)의 역사와 유래

 

한양도성은 백악산과 낙타산을 따라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로 성벽이 이어진다. 도성안과 도성밖은 높은 성벽으로 차단되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궁과 궐을 지켰다. 한양도성을 잇는 산과 산은 내4산이다. 주산인 백악산과 낙타산,목멱산 그리고 인왕산이 동서남북 이어져 있다. 서울은 산이다. 산과 산이 에워싸여 있다. 내4산을 감싸며 가장 가까이 이어져 있는 산이 삼각산이다. 세 봉우리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큰 삼각형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삼각산(三角山) 또는 삼봉산(三峰山), 화산(華山)으로 불리었다.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태조 이성계는 왕사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과 함께 수없이 올랐던 산이다. 바로 이 산이 삼각산이요, 백악산이다. 서울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고 활기찬 기운이 전해지는 진산이며, 주산이다. 그 중 가장 높은 백운대는 836.5m로 경관이 좋은 명산이요, 영산이다.

 

삼각산은 한양을 방어하는 천혜의 요새로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이 이어진다. 또한 삼각산을 내려오면 내4산 중 가장 높은 백악마루가 있는 백악산과 연결된다,

백악산과 삼각산 사이 도성 수비를 위한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도성 북쪽에 설치 되었다. 이곳이 바로 성(城)너머 동네 성북동(城北洞)이다. 삼각산의 물줄기와 백악산의 물길은 성북천(城北川)으로 모여 청계천을 향했다. 청계천 물은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모인다. 물길따라 도성 밖 저 멀리 성저십리에 마을이 이어지고 동네가 생긴다.

 

▲ 백악산 따라 펼쳐진 한양도성

 

백악산은 도성안과 도성밖의 경계이다

 

백악산 자락 도성안은 와룡공원이 있는 삼청동이며, 도성밖은 삼청터널 지나 북정마을이 있는 성북동이다. 산과 산이 아름답게 이어진 동네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높은 산과 계곡이 있는 울창한 숲속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문인들이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머물던 곳이다. 만해(萬海) 한용운의 심우장과 간송(澗松) 전형필의 간송미술관이 지척에 있다. 두분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위창(葦滄) 오세창의 벗이자 동지이며,스승으로 한 동네에 살았다.

 

심우장을 따라 만해 한용운을 만나다

 

도성안 삼청단이 있는 삼청동에서 정상을 향하면 성벽이 나온다. 성곽길 아래 울창한 숲이 와룡공원이다. 와룡공원에서 암문을 통해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마을이 정많은 북정마을이다. 서울의 개발을 피해 달려온 곳, 서민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이 곳 주민들은 도심속에 시골같은 인심과 전원생활을 꿈꾸며 옹기종기 살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 사이로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마을 공동체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동네이다.

 

▲ 백악산 성너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전경

 

골목길 담장 사이에 작약과 모란이 방긋 함박 웃음을 지으며 피어 있다. 정겨운 풍경이다. 고샅길 곳곳에 야생화와 넝쿨장미가 아름답다. 골목과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의 고요한 풍경이다. 이들은 줄비한 성북동의 저택을 짓고,아름다운 상가를 지었던 활기찬 기운을 준 이 마을의 터줏대감들이다.

성벽 따라 성곽길을 내려와 골목길 작은 집과 집사이로 큰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다. 그리고 단아한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모든 집들이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에 유일하게 북향집이다. 일제강점기 도성 너머 조선총독부 건물을 등지고 산비탈의 북향터를 택한 이유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불교 개혁가로, 시인으로 활동하셨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마지막을 보낸 집이다. 1919년 3.1만세운동때 독립선언서 부칙을 완성하신 민족만세운동 33인 중 일인이다. 이후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후 지친 삶을 성너머 북정마을 한켠에 자리 잡았다. 만해 한용운선생은 평생 일제에 저항하며 글을 쓰고,불교 혁신에 애를 쓰였다. 1944년 5월 9일 민족독립 운동에 매진하다, 이 곳 성북동 심우장에서 잠드신다. 한평생 매운 지조와 날카로운 비판을 굽히지 않았던 만해 선생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 백악산 성너머 북정마을 만해 한용운 선생 심우장과 동상

 

심우장(尋牛莊)을 찾아 가는 길

 

심우장은 어디이고, 심우장은 무엇인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이다.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나온 말씀이다. 심우장에 걸린 현판은 독립운동가이며 서예가인 위창 오세창선생이 써 주셨다. 심우장 아래에는 만해 한용운선생이 앉아 있는 상(像)과 ‘님의 침묵’시비가 아카시 향과 함께 소만(小滿)이 지나 망종(芒種)을 향해가는 여름을 시원하게 달랜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성북로29길 24 신주소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222-1,222-2 구주소이다

 

간송(澗松) 미술관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골목길을 따라 고샅 곳곳을 보면 개천을 지나 작은 동산이 눈에 띈다. 심우장에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이며 언론인이신 위창 오세창을 만날 수 있었다면 간송 미술관에서 또한번 이분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박물관으로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산재한 곳이다. 간송 미술관 정문을 들어서자 고유한 우리의 문화재를 만난다. 자연스러운 나무와 숲에 있는 석상들이 간송의 간절함을 생각하게 한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가치를 평가 받지 못했을 때 간송은 또다른 관점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을 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높은 가치로 평가하여 유물들과 문화재를 사들인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겸재 정선의 작품들은 후대에 연구를 통해 ‘추사명품집(秋史名品集)’과 ‘겸재명품집(謙齋名品集)’을 만들었다. 또한 훈민정음 원본 등 국보급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 백악산과 낙타산 따라 이어진 도성 안과 밖_ 성북구와 종로구

 

간송 전형필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하고, 아호인 간송을 선사한 분이 바로 위창 오세창 선생이시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 될 때, 서화와 골동품 수집을 간곡하게 부탁한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시다.

나라의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으로 ‘보화각(葆華閣)’을 1938년 성북동에 세웠다. 이후 간송 전형필선생이 1962년에 돌아가신 후 그 아호를 따서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개인의 전 재산을 들여 문화재를 지켜내셨다. 최일선에서 교육에 앞장서며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신 참다운 독립운동가 이다.

간송미술관은 1년중 봄(5월)과 가을(10월) 한달씩 문을 연다. 동산아래 정원의 석상과 문화재는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리움,호림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사립박물관이다. 그중 국보와 보물이 가장 많이 있는 역사와 문화,민족의 얼과 혼이 깃든 곳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신주소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 구주소이다

 

길상사(吉祥寺)을 따라 맑고 향기로움을 보다

 

▲ 법정스님이 입적한 삼각산 길상사 진영각 모습

백악산 도성을 나가는 길은 아름답다. 삼청단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초록이 물든 산속은 하얀 들꽃과 아카시향이 가득하다. 삼청터널을 지나면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이다. 삼청동과 성북동이 백악산 자락에 있다. 교통은 불편해도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삼각산이 보이는 이곳에 ‘맑고 향기롭게’를 실천하다 떠나신 법정(法頂) 스님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백악산과 삼각산 사이 고급 요정‘대원각’은 김영한(법명 길상화)사장이 법정 스님께 시주하였다. 많은 일화를 남기며 맑은 물소리와 향기로운 꽃 향이 가득한 길상사 사찰이 되었다.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이었던 대원각은 ‘무소유’을 몸소 실천한다. 역사는 짧지만 서울 시민에게 가장 가깝고 맑고 아름다운 절로, 가장 철학이 깃든 사찰이 되었다.

 

도심 속에 청정한 공간이다. 성곽에서 보이는 깊은 계곡이 있는 사찰이다. 광화문 역사광장에서 10여분 안에 바쁜 걸음 쉬어가게 하는 힐링의 산사이다. 참선과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 법정 스님의 마지막 생과 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단촐한 살림살이,눈에띄는 책과 마음을 울리는 유언장은 읽고 또 느끼고 실행하고픈 문구이다. 가슴이 울컥하다.

법정 스님께서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회주(會主)로 계셨던 곳이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에 계시다 삼각산 길상사에서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다.

▲ 법정스님이 평소에 앉았던 향기로운 의자

직접 땅을 일구며 글을 쓰고, 강론하며 무소유의 삶을 마지막까지 실천하신 분이시다. 담담하면서, 쉽게 읽히는 수많은 글들은 지금도 많은 분들의 마음을 울려준다.

빈 의자에 앉아서 비 그친 산사의 아침 풍경소리를 듣는다. 청아한 계곡 물소리는 맑고,들꽃은 향기롭다. 유유자적 노니는 산새만이 삼각산 길상사의 주인인 듯하다. 지친 일상속에 걷고 생각하고 마음을 달래는 최적의 선물이다.

길을 떠나 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세상에서 멀어져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곳이다. 단아하고 고요함만이 남는다. 소리가 숨죽이는 곳이다. 비우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다. 나만의 사색의 길에서 길을 찾는다.

여기는 길위에 길상사이다.

 

서울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신주소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3 구주소이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동네
산과 산이 아름다운 조용한 지역
삼각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아름다운 곳,

과거와 미래가 머무르는 동천(洞天)
이곳은 성북동(城北洞)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공: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