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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택의 국제분업과 한국경제-1] 장기 연재를 시작하며

■ 정양택 (경제연구자)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0.09.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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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양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997년 당시 일인당 GDP는 12,131달러였지만, 2018년 현재 일인당 GDP는 31,362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계상 4인 가족 기준 12만 달러 이상의 부가가치를 평균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출액 또한 1997년 1,362억 달러에서 2017년 5,741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역설적으로 무역흑자 구조 정착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무역수지는 매우 역설적이지만 안정적인 무역흑자 구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의 구조적인 무역적자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1977년부터 1997년까지의 누적 무역적자가 IMF 통계 기준 727억 달러였으나, 1998년부터 2017년까지의 누적 무역수지 흑자액은 6,801억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또한 2007년 이후 2017년 말 현재까지 전체 산업 기준 해외 직접투자액이 3,245억 달러에 이를 정도이며, 이로 인해 외환위기 이전의 차관 및 외채 수입국에서 해외 직접투자국으로 전환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은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은 획기적 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취업자 수는 1997년 1,347만여 명에서 2018년 2,223만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자리는 음식, 숙박, 개인서비스업 등에서 만들어졌고, 제조업과 같은 성장 산업에서는 취업자 수가 1997년 323만여 명에서 2018년 410만여 명으로 매우 미미한 증가율에 그치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측면에서 절대적 실업과 상대적 실업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시간 역시 연간 2,000시간을 상회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대변하듯 산업재해 사망률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의 양적인 숫자는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고용의 안정성은 비례해서 나빠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 초단시간 노동, 계약직 노동의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해고의 자유는 계약 형태의 자유로 관철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노동고용의 유연성은 결국 삶의 불안정성을 높입니다. 이는 한국이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청년 자살률을 기록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톱니바퀴는 여전히 강고하게 돌아가고 있고, 다수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소득 창출하는 생산구조가 양극화 가속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국민 대다수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 양극화 현상을 꼽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소득 분배율은 1996년 66.12%에서 2016년 56.24%로 하락했습니다. 이 같은 노동소득 분배율의 악화는 양극화의 주된 요인입니다. 그러나 양극화가 소득분배에 의해서만 초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소득분배 이전에 소득을 창출하는 생산구조에 양극화의 결정적 요인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소득을 창출하는 생산구조’를 국제분업구조라는 형식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하고자 합니다. 또한 국제분업구조의 내용은 제조업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한국경제를 관통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심의 국제분업구조는 20세기 초반의 ‘부등가 교환’이 다른 형태로 진화한 구조라고 판단합니다. 이와 같은 부등가 교환의 필연적 결과물로 한국사회의 실업 증가와 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현상이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업과 부동산 폭등이라는 괴물에 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엔진은 바로 부등가 교환이 관철되는 국제분업구조인 것입니다. 실업(stagnation)과 물가인상(inflation)의 합성어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구조적 현상입니다. 다수 국민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의류와 식료품 가격의 상대적 저렴함만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유일한 원천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가평은 잣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잣나무는 매우 높게 자라 사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잣을 수확하는 데 상당한 위험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헬리콥터를 이용해 바람을 일으켜 잣을 수확하는 방식이 한때 고려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헬리콥터의 운행비용이 너무 비싸고, 잣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부분을 손상할 우려가 높아 아직도 대부분의 작업에 수확전문 인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국제분업, 다국적기업의 주기적인 후진국 수확체제

다소 역설적이지만 선발국과 후발국의 국제화된 분업구조 아래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다국적기업이 각종 비법(?)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후발국의 자원과 기업자산을 헐값에 매수하는 주기적인 수확구조도 존재한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이러한 선발국의 수확 전문 인력을 경제저격수라고 부르기도 하며, 수확의 바람을 일으키는 헬리콥터를 필자는 국제분업구조라고 이해합니다.

이 책은 경제저격수를 분석하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저격수가 수확물의 확보를 용이하게 하는 경제적 기본구조를 다룹니다. 또한 수확의 바람을 일으키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매우 조용한 헬리콥터에 관해 분석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바람에 해당하는 실업과 부동산 폭등을 직접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습니다. 헬리콥터에 해당하는 국제분업구조의 운동과 재생산구조 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산업기술적 우위를 헬리콥터의 균형과 정지운동을 보장하는 뒷날개로 판단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헬리콥터는 뒷날개가 여러 개인 비행체입니다. 기술적 요인에 기초한 국제분업구조 분석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기술적 요인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다 위에 띄워 놓은 부표는 조류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지만, 깊은 바닷속 조류와 그 흐름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본질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혜안에 의해 더욱 풍성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필자 정양택은

미래전략연구원, 동북아평화연대, 새로운 코리아 연구원 등에서 감사를 지내는 등 시민운동과 싱크탱크운동에 참여해 온 경제연구자다. 기존 경제학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분업과 선발국의 경제지배전략을 분석하며 사람중심 경제학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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