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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통계조작설’, 위험한 정치적 사기

윤희숙 의원, ‘방역 음모론’으로 개천절 집회 힘 싣나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0.09.16 12:25
  • 수정 2020.09.1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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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으로 안전한 추석 보내세요.”15일 인천 소래포구어시장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리 추석 장을 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안전한 추석 보내세요.”
15일 인천 소래포구어시장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리 추석 장을 보고 있다. / 사진 = 질병관리청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거짓말은 위정자의 문제가 아니라 피치자의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매한 백성들에게 진실를 그대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받을 충격과 부작용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하므로 다소 포장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정치적 거짓말, 불가피해도 선의에 따라야

인간의 이중성을 간파한 최초의 근대 정치입문서라 할 수 있는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통치 행위”이며 심지어 거짓말에 자질이 있어야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의 정치적 거짓말은 대부분 선의에 속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란 사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행위로, 대의를 추구하는 지도자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결정이 자기모순에 봉착할 때 부정적인 측면을 이해받고자 대중의 동의를 구하고자 행하는 노력은 어쩌면 불가피할 수 있다.

데이브 레비턴은 ‘과학 같은 소리 하네’(더퀘스트 간)에서 정치인이 거짓말로 의도하는 바를 몇 가지로 유형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체리피킹 전략’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취하고 더 큰 증거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윤희숙 의원은 이를 제대로 써먹어 무명의 초선에서 단숨에 차기 서울시장을 노리는 스타 의원으로 발돋움했다. 7월 30일 제380회 임시국회 제7차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한 그의 5분짜리 연설이 큰 반향을 낳았던 것.

그런데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니 연설 당시 그가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모두 12억7871만6000원이고, 부동산으로 세종시에 2억원 규모 서울시 성북구에 3억원 규모 아파트, 서초구에 7억원 규모 전세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세입자라는 것도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역구에 전세를 얻어 사는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임차인이라 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윤 의원이 솔직하게 연설을 하려 했다면 서두를 이렇게 꺼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저는 재산이 12억여 원에 불과하고 부동산도 두 채 뿐이며 그럼에도 선거를 치러야 해서 단돈 7억 원짜리 전세를 구해 사는 평범한 임대인이자 임차인입니다”

사실관계야 어찌 됐건 그는 시종 세상 다 잃은 듯 절망한 표정과 온몸을 덜덜 떠는 제스쳐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말만 꺼내면 국민들이 뒷골을 싸매게 하는 통에 막말당이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미통당 또는 국민의힘이니 이런 인재를 놔둘 리가 없다.

당장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나서 그를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띄웠다. 김 비대위원장은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을 때 상원의원 경력 한 2년 밖에 안됐다”며 “사람 인생에 기회란 한 번 밖에 안 온다”는 말로 윤 의원에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음모론'으로 개천절 집회 명분 제공

당 대표의 격려에 고무되어서인지 윤희숙 의원은 그 직후 온 국민의 관심사인 코로나19를 노리고 다시 한 번 말잔치를 폈다.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검사 수에 따라 달라지는 데도 분모에 대한 언급 없이 확진자 수만 발표하고 있다”며 정부가 통계를 조작해 방역의 성과를 내세운다고 비판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필요할 때 검사를 늘려 공포를 조장한다는 의심이, 정부가 방역을 다른 목적에 이용한다는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썼다. 검사 수를 숨긴 채 확진자 수를 국민 통제 수단으로 써먹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다른 주장도 덧붙였다. 질병관리청이 샘플 수가 1440명인 항체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결과는 항체보유자가 단 한명으로 항체보유율이 불과 0.07%,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썼다. 그는 “요즘 감염경로를 모르는 확진자 비중이 1/4에 이르는 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향이 조금 달랐다. 윤 의원 발언 직후 권준욱 중대본 부본부장은 “필요할 때 검사를 늘린다, 이런 개념 자체는 저희 질병관리청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전혀 있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15일 저녁 jtbc에서 팩트체크 결과를 발표했다. 첫째 검사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다. 달리 조사할 것도 없이 이는 질병관리청이 매일 공개하는 ‘국내 검사 현황 총계’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4일 하루 검사 수는 1만 3576건이다. 일일 검사수만 기록해도 총 검사수와 변동치를 알 수 있는 매우 단순한 문제인데 이를 미국 대학교 경제학박사 출신인 윤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둘째 확진자 수가 검사자 수에 의존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상관관계를 보면 된다. jtbc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달 5일부터 15일까지 검사 수와 양성률 그래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검사 수가 적어도 양성률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 둘 사이에 상관성이 없는 것이 확인됐다.

데이터만 비교하면 알 수 있는 이런 문제로 방역당국의 정치적 의도를 따지니 오히려 윤 의원의 진짜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은 전광훈 서울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극우 세력들이 단골 메뉴처럼 사용해 온 ‘방역 음모론’과 맥을 같이 한다.

다만 길거리 반정부세력과 달리 윤 의원의 경우는 국회의원이라는 국가기관의 이름을 걸고 펴는 주장이라 거짓말을 넘어 공명심에 기인한 정치적 사기라 보아야 할 것이다.

윤희숙 의원이 처음부터 이런 유혹에 빠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의 유형에 대한 라스웰의 고전적 분류에 따르면 윤희숙 의원은 “권력욕 충족에 필요한 기량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인물”로, 말하자면 새내기 정치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권력 획득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든지 만족할 줄 모르는 권력욕을 보인다든지 하는 노회한 정치인의 면모가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정치인 거짓말, 권력욕 결부되면 위험천만

전업 정치인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막스 베버에 따르면 정치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치로 사는 사람’이며, 이 경우는 정치를 수입원으로 여기는 이른바 생계형 정치인이다.

다소 과장해 비교하자면 진중권 씨를 들 수 있다. 그는 온갖 정치적 사안에 시도 때도 없이 숟가락을 얹는 인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생계형 시사평론가다. 말 한 마디라도 더 자극적으로 하는 게 생활에 도움이 되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서 먹고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를 탓할 일은 없고 다만 그의 말을 받아 옮기기에 바쁜 일부 언론인들의 무능한 추종 심리가 문제일 것이다.

베버가 말하는 다른 유형은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실제 정치 자체에 의미를 두는 전형적인 대의추구형 또는 권력추구형 정치인이다. 이제 초선인 윤희숙 의원은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유형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임차인 발언이나 코로나 조작 발언 같은 그의 ‘히트작’들은 생계도 아니고 대의도 아닌 정치적 사익을 위해 지어낸 사기라는 측면이 크다. 그게 나쁜 것은 한 번 써먹은 사기로 인기를 얻으면서 점점 더 사기의 강도가 커지고 수준이 고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 번의 발언에는 그만의 뚜렷한 사기 수법이 보인다. 먼저 전제를 속인 뒤 엄숙하고 비장한 장문의 경고를 투척해 여론의 동정을 얻는 방식이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교묘하고 거창한 사기 화법을 선보일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신부는 ‘침묵의 기술’(아르테 간)에서 특별히 말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깊이 숙고한 뒤에야 입을 열라. 그대가 마음에 품은 그 어떤 생각도 사소하지 않을 터. 그 모두가 주목의 대상이요, 그 모두에 결과가 따르리라.”

윤희숙 의원은 말 좀 제대로 하는 인물이 태부족한 야권에서 보기 드문 재원이다. 비록 초선이지만 그는 강골 야성을 지니고 있다. 국책 기관인 한국개발원에 재직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앞장섰으며 광화문집회에 참석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총선을 맞아 ‘좌파 기득권 수호에 매몰된 대한민국 경제 사회 정책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책의 배신”이라는 책도 펴냈다.

하지만 인기와 권력에 취해 자신의 재능을 사기로 부풀린다면 머지않아 국민들은 그의 재능에 탄복하는 대신 그의 술수에 혀를 차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윤희숙이든 누구든, 우리 국회의원들이 순간의 거짓으로 얻은 작은 성공에 취해 ‘아주 우아한 정치 사기꾼’의 길을 걷는 불행은 피했으면 한다.

글 김선태(본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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