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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문화유산 4 - 고성 건봉사

호국 불교의 성지 건봉사

  • 기자명 미디어협동조합 시그널
  • 입력 2021.07.27 11:25
  • 수정 2021.07.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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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문화유산 4 - 건봉사 이야기

- 아미타 부처의 영험으로 통일의 불국토를 금강산에

금강산 가는 길목, 동해에서 가장 크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오백년 고찰이 있으니 민통선 너머에 자리한 건봉사이다. 굳이 위도를 따지지 않더라도 현재도 민통선 북쪽에 있고, 군의 검문없이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해진 것이 2018년이다. 사실 이런 이유로 건봉사를 방문하거나 아는 분이 많지 않았던 사찰이지만, 한국전쟁 전까지만해도 신흥사, 백담사등을 관할하는 강원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1920년대 건봉사 전경
1920년대 건봉사 전경

그러나 대웅전, 극락전, 팔상전 등 전각들로 즐비했던 대가람은 한국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울창했던 소나무 숲도 불타버렸다. 겨우 불이문만 당시의 건축물로 살아남았다. 휴전 후 민통선 지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40년간 인적이 끊기고, 오히려 신흥사의 말사로 전락했지만 중창불사와 호국불교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건봉사는 다시 한번 우뚝 서고 있다.

누각을 통해 보이는 건봉사 대웅전
누각을 통해 보이는 건봉사 대웅전

- 건봉사의 편액은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이다.

금강산, 12천 봉우리마다 사찰이 자리해 12천 사찰이 있다고 알려진 우리 불교 최고의 명산이다. 그 금강산의 남단, 향로봉 자락에 자리했으니, 건봉사는 금강산의 시작, 관문이다. 편액만으로도 고성팔경중 1경이라는 건봉사의 부심이 느껴진다.

편액은 대형 서예 퍼포먼스로 유명한 서예계의 거장 초당 이무호선생의 글씨로. 금강산 기운이 이곳까지 흘러 온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을 때 팔만사천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팔만사천을 누가 세었을 리 만무하고 그만큼 많이 나왔다는 뜻일 것이다. 그중 일부를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얻어와 통도사, 봉정암, 상원사, 법흥사, 정암사에 모시니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즉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털어 통도사 진신사리를 약탈해갔는데 이를 나중에 사명대사께서 되찾아오셨다. 찾아오신 길에 치아사리 12과를 분할, 봉안하여 건봉사에 모셨으니 이곳에 적멸보궁이 생기게 된 연유이다.

건봉사 적멸보궁 편액
건봉사 적멸보궁 편액

도둑은 안팎으로 끊이지 않아 건봉사가 민통선 안에 있어 관리가 부실하던 1980년대에 가짜 신분증으로 위장한 도둑이 들어 적멸보궁 사리탑의 부처님 사리를 훔쳐갔다. 그러나 건봉사가 어떤 절이고, 진신사리가 어떤 사리던가? 며칠을 꿈자리에 부처님 등장해 괴로워하던 도둑들이 그중 8과를 건봉사에 돌려 놓았다.

건봉사 사리탑
건봉사 사리탑-통도사 금강계단과 유사하다

그래서 3과는 다시 적멸보궁의 사리탑에, 5과는 사리를 친견하고 싶어하는 대중을 위해 사리 친견처를 종무소안에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를 직접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불심 없는 민초들도 왠지 마음이 경건해지는 공간이다.

건봉사에서 친견하는 치아사리 - 건봉사 제공
건봉사에서 친견하는 치아사리 - 건봉사 제공

- 만일염불회로 누구나 극락왕생 아미타불의 세계로

만일염불원-사리친견처
만일염불원 - 사리친견처

건봉사는 처음에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아도 화상은 전도승으로 신라에 가서 법흥왕에게 기적을 보이고 왕의 후원을 받아 전국에 사찰을 세웠으니 왠만한 사찰의 내력을 보면 <신라때 아도화상이 처음에 창건......> 하는 글귀로 시작한다. 갑중에 최고의 갑이라는 계룡산 갑사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아도화상이 창건했지만, 건봉사가 최고의 사찰로 성장하게 된 것은 발징화상이 중건하면서 부터이다. 758년 발징(發徵) 화상은 정신(貞信)과 양순(良順) 31명의 스님들과 함께 미타만일연회(彌陀萬日蓮會 - 극락 정토를 관장하시는 아미타불을 염송)를 시작했다. 그리고 29년이 지난 787년 우리 불교사의 대 이벤트가 이곳에서 벌어진다.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던 31명의 스님들은 건봉사에 현신하신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을 친견한다. 자줏빛 금으로 장엄된 연화대에 오르신 채 현신하신 불, 보살님께서는 염불하던 31명의 스님들을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워 서방극락 정토로 데려가셨다.>

- 등공대의 전설

건봉사 등공대
건봉사 등공대

등공(騰空)'이란 살아있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몸은 벗어버리고 마음만 부처의 연화세계(蓮花世界)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깨달아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것은 어려우니, 10,000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아미타불을 염불을 하면 누구나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염불만일회, 만일이면 30년이다. 옛사람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평균 4, 50세일테니 평생동안 염불을 해야 된다는 뜻이다.

어쨌든 31명의 선도승들과 여기에 신도 1,820인이 참여했다고 하니 지금은 민통선 안의 외진 사찰로 여겨지지만, 신라 당시에 2천여명이 함꼐 움직였을 정도로 큰 절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발징화상이 만일염불회를 주도하던 신라 경덕왕때는 불국사, 석굴암등 신라 불교가 불국토의 정점에 달하고 있을 때이다. 그 정점에서 수행으로 중생을 이끌었던 발징화상의 염불만일회와 아미타부처를 따라 극락왕생한 등공대로 인해 건봉사는 아미타 도량이 되었다.

등공대는 다시 허가를 얻어야 갈 수 있다
등공대는 다시 허가를 얻어야 갈 수 있다

중생과 부처는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일주문이 사찰의 입구를 알려주나 건봉사는 그 역할을 불이문이 하고 있다.

건봉사 - 불이문
건봉사 - 불이문

한국 전쟁의 화재를 피한 유일한 건축물이다. 1.6m 가량의 4개의 돌기둥 위에 나무 기둥을 올려 아름다운 사각형의 문을 만들었다기둥에는 금강저를 양각했다.

불이문의 금강저
불이문의 금강저

금강저는 인도 신화에서 아수라를 물리치던 번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문의 역할을 불이문에 상징한 것이다. 근대의 명필로 많은 글씨를 남긴 해강 김규진이 편액을 썼다.

건봉사 불이문 편액
건봉사 불이문 편액

- 능파교 건너 피안의 세계로

적멸보궁이 있는 극락전 지역과 대웅전 지역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능파교이다.

불이문 옆에 있는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를 통해 조선 숙종때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능파란 고해의 파도를 헤치고 부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였을까? 고해의 파도로 인해 몇차례 파손과 중수를 거쳤고, 2004년의 붕괴로 옛 석재의 상당수가 파손되었으나 비교적 초기 축조 당시의 원형을 잘 갖추고 있다흘러가는 계곡물과 건너편 산영루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능파교의 풍광
능파교의 풍광

- 사명대사와 만해 한용운의 자취가 호국의 성지로

조선 세조의 행차로 조선 왕실의 원당이 되었고, 4대 사찰의 하나로 성장했던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곳으로 호국의 본거지가 된다. 이로인해 장군샘이라 불리는 냉천약수에서 사명대사를 따라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이 물을 마시고 각종 질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사명대사의 전설이 있는 장군샘
사명대사의 전설이 있는 장군샘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사명대사기적비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사명대사기적비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쳐온 민족의 지도자 만해 한용운의 초기는 건봉사와 관련이 많다.

만해스님은 승적에 이름을 올리고 1907년 첫 안거를 건봉사에서 나면서 선()을 접했다. 어쩌면 스승인 연곡선사와의 인연, 불교유신론을 집필한 백담사 그 본사인 건봉사, 건봉사의 사명대사가 스님의 항일 의식에 영향을 끼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인연으로 만해 스님은 건봉사 본말사기를 통해 건봉사의 오랜 역사와 내용을 정리하셨다. 건봉사 입구에 사명대사와 만해선사를 기리고 그 정신을 잇는 기념관이 있는 이유이다.

1994년부터 복원을 시작해서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는 건봉사

현재의 건봉사 대웅전 마당
현재의 건봉사 대웅전 마당

한국전쟁 휴전일인 727일을 맞아 <전쟁의 폐허에서 금강산을 오가는 한반도 평화의 길목이 되기를> 만일염불이라도 하면 이루어질 것인가 기대해 본다.

合掌向西坐 두손 모아 서방(극락)을 향해 앉아

凝心念彌陀 온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니

平生夢想事 평생, 꿈속에서도 그리워한 것은

常在白蓮花 극락에 항상 피어있는 흰 연꽃이네

- 서산대사

 

<우문현답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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