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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당혹 속 아낌없이 타오른 바른미래당

고래 싸움에 등 찢어진 새우

  • 기자명 김선태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입력 2019.04.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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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시그널 기획위원)

 

“나는 정치가들을 경멸하는데, 그들은 모두 자만심 강한 얌체와 뺀질이들이다.”

- 줄리언 반스 -

 

 

정치인에게 정치는 사랑과 같다.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할 것인가,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할 것인가, 그게 단 하나의 질문”이라고 소설 『연애의 기억』에서 줄리언 반스가 썼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에게는 “정치를 더 하고 더 타락할 것인가, 정치를 덜 하고 덜 타락할 것인가가 단 하나의 질문”이라 말할 수 있다. 덧붙이면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질문이 되지도 않는”다. 즉 정치는 정치인의 유일한 존재 이유일지 모른다.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이라는 낯선 제도를 둘러싸고 여야가 ‘동물 국회’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밤샘 폭력 충돌을 불사했다. 무려 33년 만에 국회 경호권이 발동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불을 지폈으며 결정적 고비마다 이슈의 중심에 선 결과,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섬광 같은 주목을 받게 된 건 다름 아닌 바른미래당이다.

 

패스트트랙 추진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에게 자식 같은 작품이다. 그는 소수 정당에 절대 불리한 승자독식의 현 선거제를 혁파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게 대의에 맞고 당이 살 길이라 봤다. 손 대표는 같은 처지의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와 함께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걸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그 결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나경원 의원의 말 바꾸기로 합의가 파기되며 4개월을 허송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뒤 자유한국당을 뺀 4당이 4월 23일 각자 의총을 열어 합의안을 추인했다. 합의안은 선거제 개혁, 공수처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이 골자다. 이어 이 안건을 국회 내 두 담당 위원회, 즉 정개특위(선거제 개혁)와 사개특위(공수처와 검경 수사권)의 심의 의결과 본회의 의결 절차가 남게 됐다. 하지만 1차 시한인 25일을 넘겼다. 본회의 의결을 거쳐도 최장 330일의 법정 절차가 필요하다. 입법이 가능해지려면 해를 넘길 수 있다.

 

문제는 패스트트랙에 올릴 합의안을 각각 담당 위원회로 넘기기 전 발생했다. 정확하게는 바른미래당에서 였다. 지난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언주 의원이 지역 유세를 펼치던 손학규 대표에 대해 ‘찌질이’라 불렀다. 이로 인해 당권 정지 처분을 받은 일로 잠복해 있던 당내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손 대표가 우리 당 후보를 지원해 득표율이 올라가면 우군인 자유한국당이 떨어진다’는 황당한 셈법에 기인했다. 어쨌든 이 일은 “우리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바른미래당의 정체성 문제’를 일으켰다. 그게 패스트트랙 사태를 맞아 당 내분을 촉발한 것이다.

 

 

잘못된 만남의 전형적 사례

 

바른미래당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소수당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난해 1월 결성된 소수당이다. 출범 당시 “중도개혁보수”를 표방했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의 지향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표현은 적당히 얼버무린 합치점 정도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각에서 진보 성향이라 평가하는 것과 달리 안철수 전 대표의 실제 언행은 보수나 우익 성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게 오늘 당 내분 과정에서 손 대표 체제가 고립된 배경이다. 손 대표는, 지난해 합당 직후 박지원 의원 등 15명의 탈당으로 순식간에 30명짜리 소수당으로 전락한 데다 4월에는 안철수 본인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패배하여 일대 위기를 맞자 임시방편으로 끌어들인 일종의 바지사장이랄 수 있다.

 

지난해 9월 손학규 대표 취임 이래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 양대 계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현금 자산과 국고 보조, 원내교섭단체 자격에 안주해 왔다. 정의당에도 못 미치는 초미니 지지율을 끌어안은 채 이런저런 분란을 설렁설렁 넘겨 온 것이다. 그것이 올해 흔들리게 된 이유는 21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선 김관영·이태규·이언주 의원이지만 이들이야말로 “합당하면 20% 지지율을 넘을 것”이라 주장하며 의기투합한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20%는 고사하고 5~7% 지지율을 일관되게 받아들며 세월을 보내는 사이 4월 지방선거에서 단체장 전멸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내년 차기 총선 전패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리자 너도나도 이래서는 살길이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사족이지만 정치에 관해서라면 대의도 이념도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언주 의원은 당내 의총에서 패스트트랙 추인을 막지 못하자 미련 없이 탈당했다. 누구보다 빨리 이 상황에 대처한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당적과 이념 바꾸기로 말하자면 거의 마블 영화의 최강 빌런 타노스 급이라 할 이인제 전 의원을 빼곤 최고다. 심지어 이언주 의원은 경기 광명시 을에서 지역 최대의 지분을 지닌 손학규 대표 덕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타노스는 절대 악으로 어떤 상대와 붙어도 절대 지지 않는다. 최근 영화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는 거의 꼼수에 가까운 방법으로 ‘사멸’된다. 이언주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그를 사멸시키는 일 말고는 어떤 처방도 극우로 치닫는 그의 막말 행진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만 현재로써는 자유한국당이 그를 받아들일 명분이 없다(딱히 이바지한 일이 없으므로). 다만 그토록 원하는 부산 영도구 출마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아쉬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바른미래당 입장에서 백해무익한 정치인 이언주를 자퇴시킨 일은 그나마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의 성과라 하겠다.

 

되돌아가서, 그렇다면 합당 시 무엇이 문제였나? 요약하자면 안철수와 유승민 캐릭터 차이에 더해 호남계와 비호남계(지금은 손학규 퇴출을 위한 안철수-유승민 동맹으로 가시화됐다)의 다른 지지 기반 문제가 종횡으로 얽힌 조직을 ‘땜질식’으로 합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던 손학규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오른팔이 될 사무총장 자리를 친안철수계 이태규 의원에서 바른 정당계 오신환으로 바꿨다. 하지만 이는 안철수 전 대표의 화를 돋운 셈이 됐다. 결정적 순간 친 안계 이탈로 이어졌고, 이후 국민의당계나 바른정당계 어느 쪽의 지지를 얻는 데도 실패한 것이 지금 손 대표 상황이다. 예를 들어 같은 국민의당 출신이지만 김관영 원내대표가 패스스트랙 관철을 위해 사보임을 밀어붙이자 이동섭·김삼화·신용현 의원은 사보임 반대에 서명하며 다수파 대열에서 이탈했다.

 

바른미래당을 움직이는 핵심 결정은 최고위원회에서 나온다. 그게 손학규 대표의 유일한 권력 기반이다. 손 대표는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에서 최고위원회가 모래성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중일 것이다. 패스트트랙에 사활을 건 손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를 빼고 나면 현재 손 대표 측 최고위원은 전혀 없다.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대구) 세 위원은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권은희 정책위원장은 공수처 안건에서 지도부와 견해차를 보이다 사개특위에서 밀려나자 자리를 내던졌다. 한 줄기 희망 같았던 김수민 의원마저 26일 원내대변인직을 사임했다. 아마도 안철수 계파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최고위원으로서 손 대표 편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손 대표는 자신의 몫으로 두 명의 최고위원을 더 임명할 수 있다. 그래도 의결 정족수인 5명에서 1명이 부족하므로 최고위원회가 무력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손 대표가 “안철수의 권력욕을 인제 와서 읽었다” 한들 만시지탄일 것이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덫에 걸려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에 빗대면 “모든 정치적 자해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바른미래당은 자의든 타의든 전반적으로 자해를 거쳐 자멸로 가는 최악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공멸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개인이라도 여론의 동정을 얻어 위기를 벗어나고자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권은희 의원의 행보는 반면교사로 소개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그렇지 않아도 식물 수준이던 국회를 동물 차원으로 전락시키는 데 권 의원은 단연 대체 불가한 기폭제 역할을 해줬다. 옳든 그르든 소신이든 사욕이든 그가 아니었으면 바른미래당이 이토록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개특위에서 민주당과 안건 협상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개특위에서 통과한 안건이라도 이후 5당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당장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인 상황에서 권 의원의 주장은 좋게 말하면 변명이고 심하게 말하면 패스트트랙을 부결시키고자 한 역모의 정을 감춘 속임수다. 조짐이 일찍부터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4월 23일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을 안건으로 올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장으로 가보자. 이날 의총에 총 29명의 의원 중 23명이 참석했다. 먼저 의안 가결 조건에 관해 표결한 결과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됐다. 그에 따라 다시 표결한 결과 12:11으로 의안은 추인됐다. 참석자는 국민의당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16명이었지만 그중 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체로 골수 친안계 의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추인된 의안은 법안 발의를 거쳐 담당 특위에서 가결된 뒤 최종적으로 패스스트랙에 지정된다. 그중 선거제 법안을 다루는 정개특위는 무난히 가결될 전망이다. 반면, 공수처 법안을 다루는 사개특위는 그렇지 못하다. 사개특위 소속 의원은 18명으로 가결을 위해서는 최소 3/5인 11명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범여권 소속 의원 수가 정확히 11명이라는 것.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은 오신환 권은희 두 명이라 그중 한 명이 반대해도 안건 지정은 취소된다.

 

두 사람 중 바른정당 출신 오신환 의원은 이전부터 공공연히 반대 생각을 밝혀 왔으므로 위원 임면권(이 경우 사보임이라 부름)을 가진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 의원을 교체할 것은 당연 절차였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국민의당 출신인 권은희 의원은 경우가 달라서 평소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는 했지만 안건 상정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아 지도부 속을 썩였다.

 

그런데 권 의원의 정치 이력을 보면 그가 습관적으로 돌발 행동을 즐겨 왔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광주 광산구 을에서 당선된 뒤 전격 탈당해 국민회의와 국민의당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국민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됐다. 지난해 손학규 대표가 그를 정책위 의장에 내정했는데 4·3 보궐선거 이후 당 내분 과정에서 태도 표명을 하지 않다 이를 수습고자 손 대표가 소집한 4월 8일 최고위원 회의에 반대파들과 함께 회의에 불참, 결정적 한 방을 먹인 바 있다. 말이 앞서는 이언주 의원과 달리 속내를 감추고 다니다 뒤통수를 치는 것이 권 의원의 특기라 하겠다.

 

그런 전력 탓인지 24일 김관영 원내대표는 사개특위가 열리기 직전 오신환 위원을 사보임 시킨 다음 권 의원도 전격 사보임 시켰다. 26일 격분한 바른정당계와 일부 국민의당계가 모여 비공개 긴급 의총을 진행했지만, 과반수에 못 미치는 의총장에서 잡담 말고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4월 22일 “조속히 당을 정상화해 총선 대비 체제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내 일각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를 거듭 일

축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옆은 김관영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살아남을 길은 있는가

 

아마도 바른미래당이 정치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고, 소속 의원의 이름이 연일 대서특필되는 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얼마 안 가 바른미래당은 다시 지지율 7% 아니 그 이하의 정당으로 여론조사 끝자락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대체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무얼 꿈꾸며 자기들끼리 죽기 살기로 싸웠을까?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계산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눈 씻고 봐도 정치적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지지율로 땅바닥을 긁고 다니는 바른미래당에게 패스트트랙이니 사개특위니 하는 것들은 딴 나라 이야기이자 사치일 뿐이라 누구의 목표도 아니었다. 그래도 계산이 있었다면 초등학생도 알 만한 셈법에 따랐음이 분명하다. 즉 탈당하는 쪽에 치명상을 입히는 분당(分黨) 대신 표가 안 되니 돈도 안 되는 손학규 대표를 콕 짚어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가 의기투합하는 데 성공했다면 목표는 절반 달성된 셈이다. 당장 최고위원회가 무력화되어 손 대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오는 것은 무엇일까? 안철수 복귀나 더 훌륭한(솔직하게는 안철수계나 유승민계 양쪽의 입맛에 두루 맞는) 외부 인사의 영입? 다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후 당은 더 왜소화될 것이고, 당론은 내내 갈 짓자 행보를 이어갈 것이며, 국회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개별 의원들에게 보장된 미래 즉 내년 총선의 희망은 더 줄어들 것이다.

 

독일에서 오너가 돌아오건 광야에서 선수가 들어오건 이 상황을 뒤집기엔 상황도 여론도 바른미래당의 편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면 당내 양대 계파는 다시 주도권을 잡고자 다툴 것이며, 다시 호남과 비호남의 눈치를 볼 것이며, 다시 수장 자리를 놓고 내홍에 휩싸일 것이다. 데자뷔 같지만 그것이 숙명이라면 아쉽게도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 최대 피해자는 바른미래당이 될 수밖에 없다. 착각과 분노 속에 아낌없이 타오른 바른미래당이다. 하지만 애초 그렇게 사라질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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