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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모래알④] 벼룩시장을 걸으며

박홍순 / 작가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20.10.20 11:09
  • 수정 2020.11.1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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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미술관 기행을 위해 몇 차례 유럽을 찾았다. 서양미술사만이 아니라 미술을 매개로 인문학 분야 글을 자주 쓰는 편이어서 되도록 주요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을 위해 십여 일을 파리에만 머물렀다. 일주일이 넘도록 출퇴근하듯 미술관에 드나들었으니, 나머지 일정을 쪼개 어디를 가야 하는지 선별해야 했다. 

파리 근교에 위치한 방브 벼룩시장
파리 근교에 위치한 방브 벼룩시장

파리 방브 벼룩시장, 프랑스 근대 생활문화를 보는 듯

일 순위로 찾아 나선 곳이 바로 방브 벼룩시장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흔히 벼룩시장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벼룩’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벼룩이 들끓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라는 설, 혹은 프랑스어로 다갈색이란 뜻도 있어 오래된 물건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잘한 중고품을 사는 노천 시장이다. 유명한 기념물로 가득한 도시지만, 관광지보다 먼저 생활에 녹아 있는 문화를 얕게라도 접하고 싶었다. 오래된 서적이 많이 있다고 하니 운 좋게 괜찮은 화집을 아주 싸게 구입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미리 지도로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지하철역에 도착해서는 시장을 찾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꽤 많은 사람의 발길이 방브로 향하고 있어서 따라가기만 해도 되었으니 말이다. 

고정 시설을 갖춘 상점은 없고, 간단한 천막을 치거나 아예 작은 탁자 위에 수십 개의 작은 물건을 늘어놓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벼룩시장이지만 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규모가 상당히 컸다. 워낙 눈길을 끄는 신기한 물건이 많아서 사진은 몇 장 찍지도 못하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미술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오래된 책, 집안을 꾸미는 온갖 장식품, 목걸이나 반지 등 액세서리, 소품 크기의 가구, 누가 제작했는지 모를 그림과 조각, 그릇이나 찻잔, 포크나 주방용 칼, 각종 악기와 음반 등 말 그대로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잡다한 물건의 천국이었다. 

책 중에는 아예 도판이 있는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한쪽씩 파는 곳이 많았다. 자신이 쓰던 잡다한 물건을 늘어놓은 사람도 꽤 있었다. 얼마 전까지 직접 사용했거나 옷장 속에 있었음 직한 옷·모자·신발·가방을 두어 개씩 늘어놓은 사람도 자주 보였다. 이를 ‘다락 비우기’라고 한단다. 심지어 몇 개월 이상은 입었을 게 분명한 속옷 몇 점이 한쪽 구석에 있기도 했다. 

물건의 종류나 규모를 고려할 때 전문적인 상인으로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개인이 자기 물건을 모아 나왔거나, 설사 벼룩시장을 생계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좌판 한두 개를 듬성듬성 겨우 채울 정도로 아주 소규모 영세 상인이 꽤 많았다. 

구경하는 사람이든 팔려는 사람이든 시장에서의 한적한 시간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호객을 하는 사람은 아예 볼 수 없었다. 덕분에 오후 시간이 되어 장이 끝날 때까지 꽤 긴 시간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즐겼다. 

작은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통해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중반의 생활문화 흔적 사이를 걷는 감흥을 누렸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파리의 이른바 하위문화를 잠깐이지만 접하는 듯했다. 

여기에 더해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 수많은 사상가나 문인이, 요즘 표현으로 ‘죽돌이’가 되어 매일 글 쓰고 토론하던 카페들이 방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고 하니, 그들 역시 기웃거리며 걸었을 발자국을 따라 걷는 기분은 덤으로 주어지는 즐거움이었다.  

서울 동묘 벼룩시장의 풍경
서울 동묘 벼룩시장의 풍경

 

동묘·황학동 벼룩시장, ‘옷 장터’ 이미지 벗어나야

서울을 대표하는 벼룩시장은 단연 동묘와 황학동 거리다. 종로나 혜화동 쪽에 일정이 있을 때 몇 차례 구경하러 갔다.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고 나서 느낀 분위기는 한 마디로 ‘옷 장터’다. 사람들에게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길바닥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옷더미를 뒤적이며 마음에 드는 옷을 열심히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징처럼 되어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에서 이삼 만 원의 돈으로 여러 벌의 옷을 ‘득템’하는 장면이 TV 연예 프로그램으로 몇 차례 방영되면서 옷 장터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물론 옷 이외의 다양한 소품도 있기는 하다. 특히 황학동 쪽으로 가면 신기한 물건들을 나름대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옷 상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벼룩시장에 걸맞지 않게 고정된 상점을 두고 장사를 하는 상인이 매우 많다. 그러다 보니 일반 재래시장을 가면 흔히 보는 광경을 수시로 만난다. 크기나 모양만 다를 뿐 많은 양의 비슷한 물건을 쭉 진열해 놓은 곳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전문적인 상인이 아닌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자기가 쓰던 물건을 모아 작은 돗자리에 듬성듬성 놓아둔 사람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 찾아야 어쩌다 겨우 보일 만큼 드물다. 방브가 ‘벼룩’ 시장이라면, 벼룩을 명목 삼아 펼쳐진 ‘시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벼룩시장을 방문한 후에 문화적인 경험을 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주말이면 호기심과 함께 산책 삼아 자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하긴 인사동조차 문화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된 마당에 벼룩시장에 기대를 거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 

봄마다 가로수를 가지런하게 다듬고, 멀쩡해 보이는 보도블록을 몇 년에 한 번 걷어낸 후 새롭게 깔고, 낡은 건물을 현대식 고층 빌딩으로 다시 세우고, 청계천을 조명까지 동원하여 화려하게 꾸미기만 하면 과연 걷고 싶은 서울이 만들어질까?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공조명 이외에 다양한 콘텐츠를 고민할 때 문화적인 경험이 동반되는 벼룩시장도 한 부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장인 이상 상업적인 요소에 부정적인 필요는 없다. 대신 손때 묻은 물건을 통해 사람들이 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생활 취향을 만나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생활문화의 궤적에 공감하는 시장이 서울에도 몇 군데쯤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이나 시민단체 차원에서 일정한 기준을 갖고 조성하거나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인이 아니라 해도, 평범한 개인이 자신이나 가족이 쓰던 물건,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는 물건을 가지고 주말에 팔러 나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장터,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는 장터 말이다. 그리고 문화라는 게 본래 이렇게 생활과 맞닿아 있고, 또한 그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박홍순 : 인문학·사회학 작가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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