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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말한다-10] 단원고 유가족들이 남긴 육성의 기록

  • 기자명 김선태
  • 입력 2021.04.13 14:06
  • 수정 2021.04.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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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오디오북)』 =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금요일엔 돌아오렴(오디오북)』 =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시그널=김선태 기자]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했습니다.

그 뒤 여러 부모님과 인터뷰하여 육성 오디오북이 담긴 책을 펴냈습니다.

아래에 보려는 것은 남겨진 가족들이 가 닿을 수 없는 수백 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단원고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수학여행, 그리고 금요일에 오기로 한 아이들
작가들이 부모들 곁에 머물렀던 240일 동안, 온 마을이 상가였습니다. 안산은 250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침묵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작가들의 가슴에도 통증이 계속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록하는 것뿐이었기에.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단순 기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사진 속 아이들을 보여주며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 속에서 작가들은 부모들이 자식을 잃은 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떨리는 순간까지 기록하려 했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보아야 할 삶의 진실이 담겨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세상은 바뀌었고 그로 인해 부모들은 아파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절대적인 호의에서 절대적인 반감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지, 부모들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세상이 교활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 밑바닥의 숨겨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그처럼 기이한 고통을 받는 동안에도 부모들은 전에 없던 길들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친 것도 사람이지만 자신들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사람임을 알기에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것은 자신들을 벌하는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잃은 끝에 얻은 깨달음이고 성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유가족들이 그동안 어떻게 잘 견디고 잘 싸워왔는지 무겁고도 담담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단편적이지만 두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옮깁니다.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건우 어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서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한다. 작가는 그런 그녀를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 직전인 8월 6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천주교 신자인 그가 혹시라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단초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용기에 용기를 낸 걸음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작가에게 핸드폰 속 건우 사진을 보여 주며 그녀는 아들 이야기를 술술 실타래 풀듯 풀어놓았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아이, 공부하라고도 하지 않고, 통제하거나 뭘 강요하지도 않았던 아이. 건우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늘 부모에게 지체 없이 솔직히 말하는 맑고 밝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사고 당일 이상하게 집으로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아니라 생각하면서 상심하던 어느 날, 다른 아이 엄마가 건우 동영상이 올라 왔다고, 같이 보자고 말했다.

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혼자 인터넷을 뒤져 건우를 찾아냈다. 영상에는 물에 잠기기 직전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찾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건우는 그 속에서 다른 아이들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러고 있느라고 전화도 문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한날한시에 같이 사라진 김건우가 세 명이나 되었다.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지성이 아버지는 딸에게 미안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마른 그의 몸은 더 반쪽으로 메말라 위태로워 보였고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은 더 검게 탔다. 그가 울자 작가의 가슴에도 통증이 밀려 왔다.

사고 이후 아무 말도 못하고 유가족 곁에 머물러 있던 작가에게 오히려 자신이 도울 일이 뭐 있냐고 묻던 이였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4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받지 않으려다 받았더니 지성이었다. 같은 반 친구 전화기였다. 지성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배가 기울었어.”

그는 차분하게 일러주었다. 구명조끼부터 챙기라고. 마음이 급해져 성질을 냈다. 지성이는 비상구도 문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 거기는 갈 수가 없어.”

문은, 이미 배가 기울어 아이들이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있었던 것이다. 전화가 끊어지고 YTN 뉴스에 ‘인천에서 출항한 배’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상파에서는 아무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무작정 진도로 달려갔다. 생존자 명단에 아이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아이는 없었다.

뒤이어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해 많은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성이 아빠가 부탁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 약속, ‘구조대가 배 위에서 작업하는 장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사건 때문에 그들이 날 데리러 왔었어”
​덧붙여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억에 떠올려 쓴 시 하나를 옮깁니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인간은 그것과 공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우리 서로는 함께 해야 함을, 담담하게 일깨워준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며.

네가 와줘서 다행이야—- 그녀가 말한다.
목요일에 비행기가 폭발했다는 소식 들었어?
바로 그 사건 때문에
그들이 날 데리러 왔었어.
아마도 탑승자 명단에 그이의 이름이 있었던 모양이야.
근데 그게 뭐 어때서? 그 사람이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잖아.
혹시 내가 놀라서 쓰러질까 봐 그들이 약을 주었어.
그러고 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내게 보여주었어.
한쪽 팔만 빼고는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누군가를.
찢어진 셔츠 조각, 손목시계, 그리고 결혼반지.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어, 왜냐하면 절대 그 사람일 리가 없으니까.
그가 그런 몰골을 하고서 내게 이런 짓을 할 리가 만무하니까.
상점에 가면 널린 게 바로 그런 셔츠인걸.
그 시계는 그저 평범한, 낡은 시계일 뿐이고.
그의 반지에 새겨져 있는 우리의 이름은
그저 흔한 이름에 불과하잖아.
네가 와줘서 다행이야. 여기 내 옆에 좀 앉아봐.
그 사람은 목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어.
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에겐 아직 수많은 목요일이 남아 있는걸.
차(茶)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일 거야.
그러고는 머리를 감을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이 모든 일들로부터 깨어나려 애써볼 거야.
네가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왜냐하면 거긴 너무 추웠거든,
근데 그이는 고무로 만든 얇은 침낭 속에 누워 있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운이 아주 나빴던 그 남자 말이야.
나는 목요일을 끓일 거야, 그리고 차(茶)를 감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의 이름은 너무나도 흔해빠졌으니까—-
- 「신원 확인」(『충분하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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