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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이야기?⑦ 사실과 의견 사이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사실과 의견 사이

  • 기자명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19.01.16 16:45
  • 수정 2020.03.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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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필자주] 자소서는 필자가 2016년 모바일 앱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며 진행한 한시적 프로젝트였다. 자소서에 관심을 둔 이유는 몰개성을 양산하는 교육, 어른들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가진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울같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죽고 획일화된 사고가 극복되지 않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다해도 풍요한 정신적 삶은 요원하다. 이 연재는 학생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자소서'를 소재로 우리들 고정관념을 살펴본다(물론 자소서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맥락전환의 기본원리 / 맥락전환은 쉬운가 / 자동반응 / 자동반응의 다양한 형태들 / 범주화의 오류가 초래하는 닫힌 세계 / 진실을 억압하는 통념들 / 논리와 표현 / 태도 그리고 서술 / 사실과 의견의 구분 / 싫은 삶의 대안적 가능성 /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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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올드만,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주연한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 2012) 라는 첩보 영화가 있다. 극 중 올드만과 컴버베치는 스파이 동료다. 영화 제목은 영국의 전래동요에서 따왔다. 아이들이 팅커=땜장이, 테일러=재단사, 솔저=군인, 세일러=선원, 리치맨=부자, 푸어맨=가난뱅이, 베거맨=거지, 시프=도둑 순으로 자기 미래를 예측하며 부르는 노래다. 영화에서는 서커스–영국 비밀정보부 국장인 컨트롤이 서커스에 침투한 러시아 첩자–두더지를 가려내기 위해 체스 말에 서커스 고위직 간부들 사진을 붙여놓고 순서대로 코드 네임을 지목한 것을 뜻한다(나무위키).

 

(사진=게리 올드만과 베네딕트 컴버베치, 영화 캡처)

런던 외곽의 어느 시골 길. 둘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 자동차 안으로 파리가 날아든다. 젊은 컴버베치는 손을 있는 힘껏 휙휙 휘저어 파리를 잡으려 한다. 끝내 잡지 못한다. 연장자인 올드만은 파리가 자동차 창문 근처로 접근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그리고 접근한 순간 재빨리 창을 연다. 파리는 밖으로 유유히 날아간다. 이 장면은 아무런 대사 없이 장면 즉 사실만으로 각자 성격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젊은 컴버베치는 직선적이고 급하다. 반면 나이 든 올드만은 신중하고 과묵하며 용의주도하다. 장면을 통해 성격을 보여 줄 때 중요한 것은 대표성이다. 얼마나 성격을 잘 대표하고 있는가가 영화적 설득의 핵심이다.

영화적 기법과 자소서 같은 스토리는 다르다. 영화는 장면으로 설명하지만, 스토리는 여러 개로 하나를 보여 준다. 영화는 길고, 보는 것 즉 3차원이 지만 자소서는 짧고, 읽는 것 즉 2차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걸인에게 빵을 주는 여학생을 찍은 영상이 있다 치자. 영상은 하나의 장면으로 ①예쁘고 ②착하다 ③어떤 옷을 입었다 등등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글은 예쁘고 착하다, 어떤 옷을 입었다 등등을 다 써서 ‘매력적이다’거나 다른 어떤 하나의 결론을 드러 낸다. 예로, 지난 3편 ‘브래드 피트가 자신이 참여한 ‘<보야지오브타임>을 추천한 이유’를 들 수 있다. ①시간의 탄생을 기록한 영화다 ②그래서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보기 좋다 ③아름다운 영화이다 ④독특한 영화이다 ⑤아이맥스 영화이다, 라고 말했다. 혹은 6편에서 어떤 학교를 지원하는 사유로 “집에서도 가깝고, 졸업한 선배들도 훌륭하고, 내가 원하는 만화 분야 동아리도 있어서”인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하나의 의견이 얼마나 구체적인 근거들로 지지받고 있는가가 이야기 설득의 키이다. ‘나에 대한 설명’인 자소서도 마찬가지다.

 

 

2

(사진= 구글)

오늘도 랭어(하버드대 심리학과, 종신교수)의 실험 하나를 보고 가자. “나무 벽에 양초 고정하기”이다. 실험과정은 다음과 같다.

피실험자에게 ‘양초에 불을 붙여 벽에 고정해서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과제를 낸다. 그리고 피실험자에게 양초, 종이 상자 안에 담긴 압정, 라이터를 준다. 그런 후 양초에 불을 붙여 교실 나무 벽에 고정하라고 요구한다. 피실험자들은 대부분 해결하지 못했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라이터로 양초에 불을 붙이고 압정으로 종이 상자를 벽에 고정한다. 그런 후 상자에 촛농을 떨어뜨려 초를 세우면 된다. 하지만 대다수 피험자는 상자는 압정을 담는 용도로만 생각했다.*

두 번째 실험자 그룹에도 똑같은 문제를 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룹에는 압정을 상자 밖에 두었다. 결과는? 두 번째 그룹의 해답률이 훨씬 높았다. 압정 위치 때문에 압정 용도가 초를 세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계기는 오로지 압정의 위치다.

랭어는 참신함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주변 상황에 대해 닫혀 있는 마음 상태를 마음 놓침(mindless)** 상태라고 정의 했다. 마음 놓침 중 하나로 범주(같은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를 만들고 그 안에 갇힌 상태를 들었다. 반대로 참신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주변 상황에 대해 열려있는 상태가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참신함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늘 있을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새 요소에 주목하는 것이다. 예컨대 ‘경험과 교훈’이라는 범주도 예가 될 수 있다. 경험은 있었던 일이고, 경험을 통해 내린 판단은 경험으로 얻게 된 일종의 결론이다. 경험은 ‘사실’이고 교훈은 내 생각이 개재되므로 ‘의견’이다. 경험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면 ‘교훈’이 된다. 이때 새로 찾아낸 나만의 의미, 그것이 바로 참신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3
자소서 예이다. 요구문은 ‘본인의 인성(배려, 나눔, 협력, 타인 존중, 규칙 준수 등)을 나타낼 수 있는 개인적 경험 및 이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이다.

"한번은 담임선생님이 5시 후 연수를 받으러 가느라 안 계셨다. 종례 후 청소 시간에 서로 청소를 적게 하고 싶어 당번 간 갈등이 있었다. 학급 반장으로서 나는 친구들 청소 구역을 정해주고 솔선수범하여 청소를 도와 마무리를 잘 끝냈다.

이런 해결을 통해 많은 친구와 일을 함께하며 통솔력과 조직에 대한 적응력도 길렀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낄 때 성취감 역시 커진다는 배움을 길렀다. 또 이 경험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위에서 표현한 본인 인성은 ①솔선수범 ②통솔력 ③조직 적응력 ④책임감 ⑤자신감 ⑥긍정적 사고방식이다. 느낀점은 표현되지 않았다. 배운점은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낄 때 성취감 역시 커진다’이다. 배운점이 추상적 단어로 나열되어 있다. 배우고 느낌 점이 경험을 통한 교훈 혹은 의견일 텐데, 청소나 청소를 둘러싼 갈등처럼 늘 있을 수 있는 일에서 새로운 측면, 즉 구체적 교훈이나 의견을 포착하지 못했다. 배우고 느낀 점이 추상적이거나 없거나 부족하다. 이것은 어쩌면 자소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대하는 문제이다. 이야기가 공감가는 것은 사실이 대표성을 갖거나, 의견 혹은 교훈이 구체적일 때이다. 에피소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게 실제 ‘나’이다. 구체적인 느낌, 깨달음 혹은 나에게 일어난 정서가 내 개성이다.

예컨대 청소를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표현되었고, 나는 어떤 방법을 제안했고, 친구들은 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무엇이었고, 그 느낌은 어땠는지가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실과 의견, 경험과 교훈의 '구체성'이다. 영화 한 장면 - 앞서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의 자동차 안 장면- 을 보듯이 말이다. 교훈도 마찬가지다. 새로 찾아낸 나만의 구체적 의미, 그것이 바로 참신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4
'의견과 사실' 역시 이야기나 논리문에서 중요한 범주다. 그리고 이것들은 글의 뼈대를 잘 볼 수 있게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한다. 다음 편엔 ‘논리 프레임웍’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 필터들을 도표로 볼까 한다. 프레임웍은 어떤 일에 관한 판단이나 결정 따위 할 때 일정한 틀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다. 

1~7편 요지를 재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필터에 따라 이야기 혹은 내 삶의 진실성과 완성도를 판별하자. 필터를 통해 사물을 보듯 이야기 혹은 다른 글 , 내 삶을 판별하자. 주장과 근거(3편 브래드 피트), 계기와 이유(4편 이시영), 목적과 목표(5편 리무진 타고 온 신사), 통념과 진실(6편 위험이란), 의견과 사실(이번 7편), 경험과 교훈(이번 7편) 같은 것들이 대표적 ‘필터’다(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범주가 있다. 하지만 지금 거론한 것들은 자소서 같은 이야기 구조, 나아가서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한 갑론을박들에 대한 진위를 판별하는 데서 매우 유용한 대표적 범주-필터들이다).

오늘 기억할 것만 짚자. 의견의 구체성, 사실의 대표성. 그리고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소서 아닌 우리 삶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범주에 갇히지 마라. 우리는 생각하는 방식, 기대하는 것을 바꿔가면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엘렌 랭어)

 

덧.
*양초 세우기 실험 역시 ‘기능적 범주화의 오류’를 보여준다. 범주화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모아 한 부류로 묶는 것이다. 기능적 범주화란 사물이 각자 기능이 다르며 그것은 이미 고정 불변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다. 5편 참조.

**랭어에 따르면 마음 놓침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수동적 반응, 범주화(5편 리무진 타고 온 신사, 이번 7편 참조), 자동행동(3편 자동반응과 브래드 피트  참조), 단일 관점(1편 맥락바꾸기, 2편 맥락 바꾸기는 쉬운가 참조), 선입견(6편 위험이란 무엇인가 참조), 결과에 집중. 반면 마음 챙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능동적 선택, 맥락(1편 맥락바꾸기, 2편 맥락바꾸기는 쉬운가), 주의적 집중(3편 자동반응), 다양한 시각(1편 맥락바꾸기, 2편 맥락바꾸기는 쉬운가, 6편 위험이란 무엇인가), 과정에의 집중, 비판적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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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1985~1996년 성균관대 수학. 전 인포허브, 네오엠텔 본부장 등 모바일분야 IT업계 19년 근무. 스토리텔링 회사 <꿈틀> 기획이사를 거쳐 현 미니기업 <투와캠프> 운영 및 자영업. 꿈틀 재직 시 엘렌 랭어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심리연구소 <엘 엠 아이 코리아>와 협업해 랭어 긍정심리학을 기반한 <마인드풀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알로곤 학원> 등에서 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 강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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