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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이야기?⑪ 맺으며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노자에서 랭어까지

  • 기자명 김진욱/기획위원
  • 입력 2019.02.08 15:55
  • 수정 2020.03.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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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시그널 기획위원

[필자주]자소서는 필자가 2016년 모바일 앱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며 진행한 한시적 프로젝트였다. 자소서에 관심을 둔 이유는 몰개성을 양산하는 교육, 어른들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가진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울같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죽고 획일화된 사고가 극복되지 않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다해도 풍요한 정신적 삶은 요원하다. 이 연재는 학생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자소서'를 소재로 우리들 고정관념을 살펴본다(물론 자소서 작성에도 도움이 된다).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맥락전환의 기본원리 / 맥락전환은 쉬운가 / 자동반응 / 자동반응의 다양한 형태들 / 범주화의 오류가 초래하는 닫힌 세계 / 진실을 억압하는 통념들 / 논리와 표현 / 태도 그리고 서술 / 사실과 의견의 구분 / 싫은 삶의 대안적 가능성 / 맥락전환의 선각자들

 

1

사실 자소서가 뭔 대수겠는가. 대수라 한들 무슨 공식이 있겠는가. 필요에 따라 쓰면 된다. 이글은 참고일 뿐이다. 나는 원래 글쓰기나 논술 전문가도 아니다. 2016년 모바일 개발회사를 퇴직하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즈음 우연한 계기로 <랭어 연구소>와 협업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당시 기획하던 청소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소서를 자임했다. 새로운 경험이란 의미가 더 컸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 자소서를 보면 답답하다.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거짓 사고, 글을 위한 글, 그럴듯해 보이는 틀에 갇혀 있다. 내용 없이 뼈대만 있거나 사고 편향이 곳곳에 드러난다. 어른들을 답습한다. 

그래서 대안적 접근을 시도했다. 프로그램을 완성해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등 강의로 이어졌다. 이 때 강의는 입시를 앞둔 친구들이 아니라 고입 예비반 친구들이라 워크샾으로 진행했다. 아무튼 그때 끄적거린 것을 <시그널>이 출범한 계기로 이런 글까지 쓰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아닌 우리다. 우리 생각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미래는 똑같을지 모른다.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살아 숨 쉬는 유연함이 없으면 또 다른 편협함에 갇힌 사회가 계속 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때 앨런 랭어를 알게 됐고 그해 스치듯 만나기도 했다.

할머니 나이인 랭어는 1970년대 유명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으로 일약 심리학계 대스타로 떠올랐다. 마음 챙김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현대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어리석은 행동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심리학적 실험결과로 추적하고 이유를 증명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실험은 높은 평가를 얻으며 ‘심리학계의 하이젠베르크 같은 인물’이라는 칭송을 얻었다(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이라는 현대 과학을 수립하는 데 공헌했고 여기에서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가 유래되었다. 1901-1976까지 생존했다).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 종신 교수가 되었다.

참고로 시계 거꾸로 돌리기는 1979년 실험이다. 랭어는 75~80세 노인들을 어떤 규칙에 따라 1959년 시점 즉 55세 때 심적 상태로 돌려놓은 뒤, 영화감상, 게임, 정치토론, 기억력 테스트 등을 하며 지내게 했다. 나흘 뒤 실험집단은 유연성, 민첩성이 높아지고 손가락 길이와 앉은키가 커졌고, 지능 지수까지 올라가는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이 놀라운 실험은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보고되었고, 랭어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내게는 랭어가 주목받는 현실이 한편으론 씁쓸했다.

 

2

그녀가 제기한 것들은 우리에게는 이미 낯익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일상화, 일반화된 내용이 심리학, 하버드, 실험 등등의 형식적 맥락 아래서만 권위를 얻는다는 것이 사실 웃기는 일이다. 맥락 바꾸기의 수많은 구루들이 우리에겐 이미 있다.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 그녀 글을 보자.

"우리는 수많은 범주를 사용하는데 이 범주들은 현상을 다루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런 경향성이 가장 정교한 형태로 발달한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 곧 우리 삶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거룩하게 해주는 관념 체계다. 민족주의ㆍ공산주의ㆍ실존주의ㆍ기독교ㆍ불교 등등.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정체성, 행위 규칙, 세상사의 원리와 이유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실재(實在, 실제로 존재함) 및 남들과 공유하는 실재를 구축해놓고 그것의 제물이 된다. 그 실재라는 것들이 사람이 만든 개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앨런 랭어, <마음 챙김>, 2015).

"우리는 시간에서 낮과 밤 겨울과 여름을 잘라낸다. 우리는 감각의 대상이 되는 연속체의 각 부분이 무엇인지 정하는데 이 모든 추상적인 무엇들이란 결국 개념들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란 자기 경험의 원천인 지각 체계를 개념체계로 대체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랭어가 위에서 재인용, 근대 심리학 창시자 윌리엄 제임스, <우리가 사는 세상>).

랭어는 직접 실험 또는 실험 사례로 이를 증명했다. 예컨대 5편 문짝 실험, 그리고 6편 강아지장난감 실험에선 한 번 형성된 관념체계가 실제를 어떻게 배반(?) 혹은 유린하는지 보았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 등 연구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거나 ‘젊게 살면 젊어진다’ 같은 많은 속설은 오늘날 의학계에서 과학적 근거를 얻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버드 교수가 아니어도 우리 선조들은 직관으로는 다 알았기에 늘 우리를 깨우쳤다. '관념이 실재를 구축하고 그것의 제물이 되는 것'을 경계해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말씀하곤 했다.

“아는 게 병이다”.

이외에도 랭어가 증명한 것은 수많은 인물, 수많은 버전으로 리바이벌 할 수 있다. 책 한권으로 모자랄지도 모른다.** 그중 우리에게 범주화된 인물 하나만 보자. 다름아닌 노자(老子)다. 그가 남긴 <도덕경> 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도는 항상하는 도가 아니며 이름은 영구불멸의 이름이 아니다”(1장,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이미지=노자.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
라고 인터넷에 씌여 있다. 어쨌든 공교롭게 도덕경의 마지막장은 '절학무우絶學無憂'로 시작한다. 학문이라는 것을 없애면 인간에게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즉 아는 게 병이란 뜻이다

도덕경 제1장은 사실 랭어 말과 같다. 이름이 개념 즉 범주다. 범주를 만들고 그 범주 간 구별을 짓는다. 이렇게 범주로 구별되는 것을 '개념'이라 한다. 위에 써진 글 - 도, 세계, 영구 불멸, 이름…이게 다 개념이다. 개념은 이미지 곧 상(相)이다. '나'라는 개념은 내 것, 내 가족, 내 신념 등등 끝없이 가지를 친다. 그런데 랭어와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다. 지식에 의해 파악된 상, 허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잡혀' 산다. 이걸 자각하는 게 마음챙김(확장해서 해탈)의 실마리다. 관념 체계의 속박을 벗어날 때 맥락을 자유 자재로 바꿀 수 있게-자유롭게- 된다(고 한다). 

이 자각은 매우 쉬운데 쉽지 않다(2편 맥락 바꾸기는 쉬운가? 참조). 깨달음(覺)이란 알음알이(識)가 아니다. 깨닫는 것은 보는 것이고, 아는 것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때 필자와 사찰에서 함께 생활하던 도반 형님은 ‘깨닫다’ 어원을 독특하게 해석했다. 깨닫다는 원래 개(열 開)+닫다(閉)라는 것이다. 즉 열고 본 다음 다시 닫는다는. 진위는 모르나 그럴듯하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보는 것은 체험이다. 종교적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체험으로 안 것은 쉽게 잊지 못한다. 한편 체험하지 못한자는 이를 보통 맹목이라 비판한다. 인식되지 않은 필연성은 맹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헤겔은 인식된 필연성이 자유라고 말했다).

 

3

랭어 그리고 노자 이전에 일찍이 범주에 갇힌 닫힌 삶을 일깨운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인식마저도 범주에 갇혀 인식한다. 종교라는 범주다. 그는 석가모니다. 그가 철학자인지 수행자인지 혹은 절대자인지 라는 외적 규정-즉 범주-는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종교는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만들었다. 아무튼 그는 말했다.

(만물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도 없어진다(此滅故彼滅)”(《잡아함경》).

물론 연기(緣起)를 말하지만 확장하면 이 역시 개념이 실제의 반영임을, 그리고 우리는 범주를 만들어내고 그 범주 간에 구별을 지으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웅변한다. 보다 극적 표현은 《금강경》에 있다.

“무릇 있는 바 상(相)은, 다 이것이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상(相)은 범주다. 범주에 갇히지 않으면 자유(여래)롭다. 랭어, 나아가 노자, 석가모니는 왜 이런 범주 즉 구별 지음의 문제를 계속 말할까? 우리는 범주화를 통해 생산한 지식과 정보, 거기에 자기의 경험을 가미해 파악된 상으로 이데올로기, 관념 체계를 구성한다. 이 관념체계가 일시적 임의적임을 잊고 스스로를 가둔다. 맹신한다. 그 맹신 때문에 온갖 어리석음(랭어식으로 말하면 마음 놓침)을 일으켜 스스로 어리석음을 만든다. 그래서 선각자들은 범주가 핵심이라고 보았다.***

범주란 객관과 경험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음을 알 때 얽매임 없이 사실을 바라보며 맥락을 무한히 확장하게 된다. 곧 각자에게 파편화된 세계로부터 벗어나 생동하게 된다. 그것은 랭어 실험으로 증명되듯 과학이다. 랭어는 맥락에 갇히는 것이 모든 어리석음의 출발임을 내내 강조했다. 노자나 석가란 인물 역시 기존의 맥락=통념으로 이해하지 말길 바란다. 범주에 갇히지 말라는 것은 범주를 해체하라는 게 아니다. 범주의 한계를 벗는 것은 마음놓침으로부터 마음챙김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한편 '범주의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것일까?' 잘라말하면 전혀 아니다.

맥락 전환이 관념론이며 지배이데올로기에 복무한다는 비판은 무지몽매다. 오로지 종교 혹은 특정한 관념체계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로 맞대고 우열을 따질 수 없는 다른 차원이다. 마치 2차원 개가 3차원의 개를 보고 짖는, 그 자체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담이나 젊은 시절 수행 생활하며 우리가 '불교'라고 흔히 규정하는 체계가 사실은 이런 맥락바꾸기 연습을 위한 ‘거대한 기만’(선의의, 말하자면 하얀 거짓말이다. 요컨대 종교로서 불교는 없다)에 불과한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영화 <인셉션> 바닷가 장면 처럼 수천년 지속한 통념이란 건물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4
어쨌든 역설적인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뭐가 역설적일까? 랭어는 맥락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맥락에 사로잡힐 때 우리가 어리석어진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으로 입증하지만 정작 우리는 형식적 범주에 사로잡힐 때만 그말의 권위에 복종한다. 예컨대 하버드ㆍ종신교수ㆍ심리학적 실험의 결과 같은 것들이다. 이글을 읽으며 만일 독자가 도덕경의 1장이나 인용한 금강경 게송을 '깨달았다면' 그저 염화미소를 지으면 된다. 나머지는 잡설이다. '보고 확인하면'(각) 굳이 읽을(식) 필요 조차 없어진다. 다시말하지만 자소서가 뭔 대수겠는가? 하지만 거기서 출발했으므로 이것으로 마무리하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을 사족으로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자기> 소개 > 서 순서로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자소서만은 아니다. "서" 즉 무언가 설명하는 기술,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소개" 즉 무언가 객관적 ‘레떼르'=상표= 직함을 구성하는 것=경험하는 것, 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소개(=경험, 행위)보다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객관을 파악한 자기=유아독존적 존재로서의 자기에 대한 자각=교훈=깨달음)이다. 이때 자기란 한없이 자유로운 자기일 수 있다.

이때 자기는 주관과 아상 즉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빠진 자기가 아니라 마음 챙김을 통해 온전히 객관을 파악하고 맥락을 바꿈으로서 늘 푸르르게 살아가는 전인적 존재이다. 전인적 존재라는 자각속에서 자소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남에게 하는 자기 소개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들어 가는 자기 스토리이며, 스토리 보다 중요한 것은 늘 푸르른, 자각한 자신의 삶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끝]

 

덧1* 그녀의 실험에 대해 다스 캐플런이라는 사람은 <현대심리학> 서평에 이렇게 썼다. 

“프로이트, 피아제, 베르너, 비고츠키 등 석학들과 마찬가지로, 랭어는 인간 기능에 관한 거대 이론에 이르는 길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으며, 교육-학습-발달과 노화-집단 관계론, 그리고 임상심리학과 신경 병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덧2** 마음 챙김의 무수한 버전 중 굳이 하나 꼽자면 스티브 잡스가 한 말도 후보가 될것이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범주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란 기능의 총화다(Design is not just what it looks like and feels like. Design is how it works)".

굳이 재해석하면 디자인은 선험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용자 사용성 즉 기능에 의해 규정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결과한다. 이말은 ‘최상위 철학은 예술과 같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요컨대 그는 디자인에 대해 기존 범주에 갇히지 말것을 주문한다.

덧3*** 랭어와 노자, 석가모니를 함께 거론했다고 해서 같은 수준의 언설을 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랭어는 부분적일뿐더러 보지(覺) 않고 아는 것(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랭어는 일상 수준에서, 노자는 처세 수준에서, 석가는 자아의 본질 수준에서 말한다. 이 차이를 분명히 가르는 또하나 기준은 후대의 상찬이다. 경(經)은 수백 수천년동안 민중을 각성시키며 삶을 변화시킴으로서 선각자들 말 또는 글에 바치는 최고 존경을 뜻한다. 외울만큼 압도적 영감을 주기에 우리가 경이라 부른다(그 아래 레벨로는 론論이 있다. 예컨대 맑스의 자본론 원래 제목은 '자본Das Kapital'이다. 말도 안되는 농담 한마디 하면 이글이 그런 평가를 얻으면 <자소서경> 혹은 <자소서론>이 된다. ㅋ)

덧4**** 예를 들어 임란 때 의병을 이끈 서산대사나 1963년 소신공양으로 분신한 베트남 틱 쾅 둑 스님을 역사적 보수, 진보의 프레임으로 평가하려는 것은 의미 없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일을 했느냐이다. 

덧5. 미련이 많아선지 덧도 길다. 모니터해준 친구의 지적에 대한 필자 답이 마지막 사족이다.

(1)"중3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인지. 글쓰기 기준은 중 3이다": 깨달아야하는 걸 말로 설명하려니 어려움. 중 3이 이해 못함. 자소서 작성이 아닌 맥락 전환이 주제.
(2)"꼰대, 일방적 가르치는 투는 아닌지" : 가르치는 듯한 글이나 맥락에 갇혀 살지 말길 바라는 염원을 담음. 범주화에 갇힌 삶이 너무도 익숙해서 모두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음. 자소서는 핑계. 개구즉착(開口卽錯)이겠지만.

(3)"잘난 체는 아닌가": 사실 내 생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말을 '가리키는' 글임. 그들말에서 임팩트를 받으면 내가 아니라 독자가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을 거니 큰 의미는 없겠으나.
(4)"누가 읽을 것인지. 대상 나이나 성별?은" : 40대 이상 고 혹은 대졸 이상?
(5)"쓰고 난 후 내가 읽어도 만족할 수 있는지" : 나는 만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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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1985~1996년 성균관대 수학. 전 인포허브, 네오엠텔 본부장 등 모바일분야 IT업계 19년 근무. 스토리텔링 회사 <꿈틀> 기획이사를 거쳐 현 미니기업 <투와캠프> 운영 및 자영업. 꿈틀 재직 시 하버드대 종신교수인 엘렌 랭어의 한국인 제자들이 설립한 심리연구소 <엘 엠 아이 코리아>와 협업해 랭어 긍정심리학을 기반한 <마인드풀 자기소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메가스터디 윈터스쿨> <알로곤 학원> 등에서 강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 강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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