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보여준 권력의 속살미국 영화 ‘씬시티’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범죄 장면으로 유명하다. 명암 대비가 극단적일 정도로 뚜렷한 흑백 영상이 관객을 화면으로 빨아들인다. 폭력으로 얼룩진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의미심장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씬시티의 부패한 지배자인 상원의원 로어크가 범죄 도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정의로운 형사 하티건에게 증오를 담아 건네는 말이다.“방아쇠를 당기면 파워풀하게 느껴지나? 파워란 그런 배지나 총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파워는 거짓말에서 나오지. 크게 거짓말해서 세상 전체가 함께 놀아나게 해야지. 일단 사
속 시원한 한 마디?행정 각부의 업무를 총괄하고 국무위원을 통솔하는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라고 역정을 낸 일로 며칠간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이례적일 정도의 날 선 비판에 대해 속이 다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꽤 많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전 국민 대상 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찬물을 끼얹은 곳이 바로 기획재정부였다. 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로,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전업 작가로 살아온 날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십여 년은 넘었다. 또한 참 다양한 자리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을 상대로 강연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출판이나 강연 관련하여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나요?” 처음에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들은 말이어서 그냥 웃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글이건 말이건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내용 이전에 전문가 여부에 두어진다. 전문가라면 일단 권위부터 인정한다.프랑스 화가 페르
한국은 지금 먹방의 전성시대몇 년 전에 곱창구이를 먹으려다 포기한 날이 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만 봐도 군침이 돌기 마련이다. 고소한 맛, 겉은 쫄깃하고 안은 부드러운 식감을 떠올리며 평소에 봐둔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좌석에 손님으로 가득하고 문 앞에 대기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특별히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아니어서 의외였다. 할 수 없이 검색을 통해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입맛만 다시고 돌아섰다.나중에야 무슨 일인지 알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여성 가수가 곱창구이를 먹는 장면이
정치적인 음모론에 빠지다지난번 정치평론에 대해 언급한 김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그림을 하나 보자. 이번에도 윌리엄 홀브룩 비어드의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마리의 원숭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박에 열중이다. 모두가 패를 감추고 확실한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순간을 준비한다.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뒤로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있을 듯하다. 건너편에서 자기 패를 하나 내놓자, 다들 고심에 빠져든다. 오른쪽에서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자기 패를 다시 보며 승부
정치평론의 홍수 시대를 살다윌리엄 홀브룩 비어드는 주로 동물을 통해 인간사회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동물이 인간보다 오히려 인간의 특성을 더 잘 설명해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동물을 등장시킨 우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그의 그림은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다가 조금씩 우리 현실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은 유럽인들의 흔한 저녁식사 광경을 보여준다. 본 메뉴를 먹은 후에 디저트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복장을 보니 다들 나름대로 ‘한 지식’ 하는 모양새다. 왼쪽에
그리운 사람, 노회찬 ‘노회찬 1주기 추모미술전시회’에서 관람객들에게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전문 도우미) 역할을 한 적 있다. 노회찬을 추모하며 함께 꿈꾸는 세상을 그린다는 취지에 공감하여 50여 명의 미술가가 기꺼이 참여한 자리였다. 노회찬재단에서 사람들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일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두말할 필요 없이 알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선배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는지라 관련한 행사나 교육 요청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따르고 있다. 행사가 열린 전태일기념관 세 개의 층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작품과 활동 자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하루는 카페에 들어서려는데, 바깥에 걸어놓은 칠판에 적힌 시인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사랑은 표현하고, 꽃은 피어야 하고, 비는 내려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한다.”온라인에서 사랑에 대한 인상적인 문장으로 종종 소개되는 글이지만, 문득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판의 상태와 맞물리면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볼 무언가를 접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칠판을 바깥에 여러 날 두었던 듯하다. 잠시 가랑비를 맞았는지 글의 아랫부분이 빗물에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했다. 어딘지 ‘비극’의 냄새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미술관 기행을 위해 몇 차례 유럽을 찾았다. 서양미술사만이 아니라 미술을 매개로 인문학 분야 글을 자주 쓰는 편이어서 되도록 주요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을 위해 십여 일을 파리에만 머물렀다. 일주일이 넘도록 출퇴근하듯 미술관에 드나들었으니, 나머지 일정을 쪼개 어디를 가야 하는지 선별해야 했다. 파리 방브 벼룩시장, 프랑스 근대 생활문화를 보는 듯일 순위로 찾아 나선 곳이 바로 방브 벼룩시장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흔히 벼룩시장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벼룩
“야! 이 책 무진장 재미있겠다!”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낮에 한적한 카페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한 말이다. 내 자신이 글쟁이여서인지 귀가 솔깃해진다. 북 카페는 아니었지만 한쪽 벽에 책장이 있고 백여 권의 책이 있는 곳이었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책꽂이에 있던 책 하나를 꺼내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책장을 뒤적인다. ‘껍데기’에 인생을 내맡기는 시대“에이, 이게 뭐야!”몇 초 정도나 됐을까, 여기저기를 펼치더니 이내 탁자 구석으로 휙 던져놓는다. 다들 실망스러운 눈치다. 공연히
지방 강연을 위해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보면 휴게소 화장실을 들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대한민국 화장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이용객이 오가면서도 몸이 닿을 일이 없을 만큼 통로나 변기 주변이 널찍하다. 직원이 수시로 청소하기에 항상 청결하다. 변기에 금이 가거나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다. 화장지가 없거나 부족해 낭패를 보는 일이 없다. 수도꼭지 주변에는 늘 비누가 있고, 겨울이면 따뜻한 물도 나온다. 솔직히 말해 어떤 경우에는 집 화장실보다도 깨끗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지하철 화장실도 쾌적하다.
모래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흔하고 사소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셀 수 없이 많이 널려 있거나 너무 작아서 보잘 것 없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대중가요에서 감정 표현 수단으로 곧잘 등장하지만 별로 다르지 않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이라든가, “부서져버린 모래알처럼”이라는 식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덧없음을 비유하는 정도다. 한국 사람들만의 고유한 정서는 아니다. 서구적 사고방식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에서도 모래는 종종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시그널=김선태 기자] 헌법 전체를 주의 깊게 꼼꼼히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법 자체를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통념이 작용한다. 저자는 그러한 통념을 깨고 헌법이 규정하는 최소한의 규칙을 이해할 때 성숙한 시민이 되어 ‘나’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 책을 펴냈다.헌법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은 전공자를 위한 교과서이거나 수험서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불친절하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헌법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